서울의 한 IT기업에서 근무하는 이슬기(34세, 가명) 씨는 지난여름 처음으로 혼자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그는 “매일 같은 출근길, 같은 점심, 같은 사람들 속에서 내가 점점 ‘기계’가 되어가는 기분이 들었다”며 “비행기 표를 결제한 순간부터 모든 게 달라졌다. 단지 떠난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고 말했다.
이슬기 씨의 말처럼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일상으로부터의 이탈’이다.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는 순간,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세상의 디테일이 눈에 들어온다. 낯선 거리의 냄새, 다른 언어의 리듬,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새로운 자아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택호 교수(수원대 경영학전공)는 이러한 ‘환경의 전환’이 인간의 인식 구조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고 말한다. 반복되는 자극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극을 경험할 때, 뇌는 다시금 창의적 사고를 활성화한다. 여행이 곧 ‘사고의 리셋’이 되는 이유다. 결국 여행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스스로를 새롭게 발견하는 감정적 실험의 장이다.
김형주(38세, 가명) 씨는 10년째 직장생활을 이어오던 중, 예고 없이 찾아온 번아웃을 겪었다. 그는 “모든 게 지루하고,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도 모르겠더라”며 “그때 우연히 친구가 권한 일본 교토 여행이 전환점이 됐다”고 회상했다.
김 씨는 여행지에서의 경험이 자신을 완전히 바꾸었다고 말했다. “아침마다 들리던 커피숍의 바리스타가 매일 환하게 웃더라. 그 단순한 친절 하나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나는 언제 이렇게 여유롭게 웃어본 적이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여행은 그에게 새로운 시각을 안겨주었다. 일상에서 무심코 흘려보내던 장면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사람과의 작은 대화가 얼마나 따뜻한지를 다시 느꼈다고 한다. 그는 “돌아와서 회사 동료를 대하는 태도부터 달라졌다. 더 듣고, 더 공감하게 됐다”며 “여행은 내 감정의 감도를 다시 맞춘 계기였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낯선 곳에서의 경험은 자기 회복과 성장의 촉매제가 된다. 타인의 삶을 마주하면서 우리는 자신을 다시 이해하게 된다. 문화와 언어, 환경이 다르더라도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은 통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는 한층 넓어진다.
여행이 끝난 뒤 진짜 변화는 시작된다. 다시 회사로 돌아온 이슬기 씨는 “여행 전에는 ‘퇴사’만이 해답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삶을 조율하는 방법’을 배운 것 같다”며 “주말마다 근교를 여행하거나, 평일 퇴근 후 짧은 산책을 즐긴다. 일상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처럼 여행은 삶을 재정의하는 경험으로 이어진다. 떠났던 이유가 무엇이든, 돌아올 때는 새로운 관점과 태도를 얻게 된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여유, 불확실성 속에서도 버틸 수 있는 힘, 그리고 작은 행복을 다시 느끼는 감수성. 그것이 여행이 남긴 진짜 선물이다.
김형주 씨 역시 “이제는 바쁘게 사는 것보다 ‘나답게 사는 법’을 고민한다”며 “다음 여행은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가보려 한다. 인생도, 여행도 계획대로 되지 않아야 더 흥미롭더라”고 웃었다.
결국 비행기 표 한 장은 새로운 세상으로의 초대장이자, ‘나 자신’을 다시 발견하는 여정의 출발점이다. 떠남은 도피가 아니라 회복이며, 여행은 인생의 속도를 잠시 늦춰주는 가장 인간적인 선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