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은 누구의 것인가
“시간이 부족하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는 말은 현대인의 일상적인 탄식이다. 그러나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이런 탄식이야말로 인간이 시간을 ‘잘못’ 이해한 결과라고 말했다.
그에게 시간은 시계가 재는 숫자가 아니라 ‘의식이 흐르는 질적인 경험’이었다. 그는 이를 ‘지속(durée)’이라 불렀다. 지속은 단순한 연속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가 서로 스며들며 한 인간의 ‘살아 있는 흐름’을 구성하는 시간이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우리가 흐를 뿐이다 - ‘지속’의 본질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시간은 분·초 단위로 잘게 쪼개진 양적 구조다. 하지만 베르그송은 이것을 “공간화된 시간의 착각”이라 했다. 진짜 시간은 분절되지 않는다. 그는 “의식 속의 시간은 하나의 흐름이며 나누어질 수 없는 생명 그 자체다”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한 곡의 음악을 생각해보자. 음 하나하나를 따로 떼어 분석하면 그 음악의 감정은 사라진다. 음악이란 처음과 끝, 과거의 울림이 현재의 음에 겹쳐 들리는 ‘지속의 경험’이다.
즉 우리가 ‘시간이 흐른다’고 느끼는 것은 사실 우리 자신이 흘러가고, 변하고,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의 본질은 외부가 아니라 ‘나의 의식’ 안에 존재한다.
멈춤의 철학 - 순간 안에 과거와 미래를 품다
시간의 주인이 되는 첫걸음은 ‘멈춤’이다. 멈춘다는 것은 단순한 정지나 무위가 아니라 의식의 중심으로 돌아가는 행위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멈출 때—예를 들어 산책 중에 하늘을 바라보거나 명상 중 호흡을 느낄 때—그 순간 안에서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가능성이 한 점에 수렴한다.
베르그송은 이러한 순간을 ‘지속의 체험’이라 불렀다. 그것은 우리가 시간을 ‘살아내는’ 경험이며 과거-현재-미래가 동시에 존재하는 지점이다. 멈춤은 시간의 흐름을 끊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 전체를 ‘자각’하는 일이다. 그때 우리는 시간에 쫓기지 않고 시간을 ‘느끼는 자’로 변한다.
시간의 노예에서 주인으로 - 통제의 환상에서 벗어나기
현대인은 시간 관리 앱과 시계로 자신을 통제하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더 불안해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통제’의 개념이 외부적이기 때문이다.
베르그송 철학에서 진정한 시간 통제란 외부 세계를 조작하는 능력이 아니라 내면의 흐름을 이해하고 동화하는 것이다. 즉 시간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통제’가 아니라 ‘수용’이다.
몰입(flow) 상태에 있을 때 우리는 시간의 감각을 잃는다. 그러나 그것은 시간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간 그 자체와 하나가 된 상태다. 따라서 시간의 주인은 ‘시간을 조절하는 자’가 아니라 ‘시간 속에서 완전히 존재하는 자’다.
지속의 감각이 주는 내적 자유 - 지금 여기서 존재하기
베르그송의 지속 개념은 단순한 철학적 사유를 넘어 오늘날의 삶에 실질적 해법을 제공한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머무를 때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불안은 희미해진다. 그 대신 우리는 ‘존재의 연속성’을 느낀다. 이것이 바로 내적 자유의 시작이다.
시간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시계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의식을 일깨우는 일이다. 그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시간의 노예가 아니다. 과거는 흘러가지 않고 미래는 오지 않는다. 오직 ‘지속하는 현재’만이 있을 뿐이다.
미래를 사는 법은 지금을 사는 법이다
“시간의 주인이 되고 싶다면, 먼저 시간을 멈추어라.” 이 역설적인 명제는 베르그송 철학의 정수다. 멈춤은 무기력이 아니라 모든 시간의 통합이다.
우리가 의식의 중심에서 ‘지속’을 자각할 때 과거는 기억으로 녹아들고 미래는 가능성으로 열린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시계를 보지 않고도 시간의 의미를 느낄 수 있다. 시간을 통제한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이해한다는 뜻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