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빠, 엄마는 왜 나한테만 뭐라 그래?”
한 초등학교 5학년 딸이 식탁 위에 올려둔 휴대폰을 손에 쥔다. 어머니는 “숙제부터 하고 봐!”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때 아버지가 나직이 말한다. “그냥 좀 하게 둬. 요즘 애들 다 그렇잖아.” 이 짧은 순간에 한 가족의 심리적 균열이 스며든다. 어머니는 “당신은 왜 항상 딸 편만 드냐”고 따지고, 아버지는 “맨날 나한테만 뭐라고 하지 말라”며 자리를 피한다. 이 장면은 단순한 훈육의 불일치가 아니다. 심리학자 Sheila Eyberg(1988)가 개발한 PCIT(부모-아동 상호작용 치료)의 핵심 가정에 따르면, “부모의 일관성은 아동의 정서 안정의 중심축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훈육의 일관성보다 ‘지적받지 않기’를 우선시할 때, 가족 체계는 균형을 잃는다. 아버지가 딸 편을 드는 이유는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자신이 비난받는 자리에 서지 않기 위한 무의식적 회피인 경우가 많다.
‘지적 회피’는 어디서 오는가
‘지적 회피(criticism avoidance)’는 세계적 가족치료 권위자인 Alan E. Kazdin (Yale University)의 연구에서 ‘부모의 통제감 상실에 대한 방어기제(defensive mechanism against perceived incompetence)’로 정의된다. 즉, 아버지가 지적받을 때 느끼는 불편함은 ‘내가 무능한 아버지로 평가받을지도 모른다’는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의 위협이다. 한국 사회의 아버지 세대는 성장 과정에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약함” “참고 버텨야 하는 게 남자다”라는 규범 속에서 자랐다. 따라서 PCIT 코칭처럼 ‘행동을 교정받는 과정’ 자체가 자존감에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 이때 아이는 아버지의 내면에서 “안식처” 역할을 한다. 즉, 아버지는 자신을 비판하는 아내 대신, 자신을 이해해주는 존재로 딸과의 정서적 연합(emotional coalition)을 선택한다. 이 연합은 순간적으로 위로를 주지만, 가족 체계에서는 ‘편애’로 나타난다.
사랑으로 위장된 정서적 동맹
미국 워싱턴대의 John Gottman은 40년간의 가족 연구에서 “자녀와의 정서적 동맹이 부부 간 정서적 단절을 보상하는 경우, 그 가족은 높은 갈등 구조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이 현상은 심리학 용어로 “삼각화(Triangulation)”라고 부른다. 가족 내 두 사람(예: 부부) 사이의 긴장이 제3자(아이)를 통해 완화되는 현상이다. 즉, 아버지는 아내와의 갈등을 직접 다루기보다 딸과의 관계 속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얻는다. 이때 딸은 “엄마의 적”이 아니라 “아빠의 보호자”로 역할이 왜곡된다. 그 결과 아이는 부모의 감정적 불안정을 감지하고, 스스로의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Emotion Regulation)이 약화된다. 이는 PCIT 연구(Thomas & Eyberg, 2011)에서 “부모의 회피적 태도가 아동의 정서 조절 실패를 예측한다”고 밝힌 바 있다. 아버지는 딸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딸을 감정적 방패로 삼는 셈이다.
통제감과 자존감의 교차점
심리학자 Daniel Siegel(UCLA)은 『The Power of Showing Up』에서 “부모가 아이에게 정서적으로 ‘보이는 존재’가 되려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감정과 대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PCIT 코칭 상황에서 아버지는 종종 “통제당한다”고 느낀다. 그는 “아이를 통제하지 못한다”는 비판보다 “내가 틀렸다는 지적”을 훨씬 더 큰 위협으로 경험한다. 따라서 그는 행동을 바꾸기보다 정서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관계, 즉 딸과의 “친밀한 연합”으로 이동한다. 이때 아버지는 “좋은 아빠”라는 자기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실제 변화의 요구에서는 도망치는 구조를 형성한다. 이는 ‘권위-애착의 이중 모순(double bind)’이라 불린다. 심리적 방어로는 합리적이지만, 가족 체계에서는 아내의 훈육권을 무력화하고, 딸의 자기조절 능력을 저해한다.
“아버지는 정말 딸의 편인가?”
심리학적으로 볼 때, 딸의 편을 드는 아버지는 사랑의 표현이 아니라 불안의 표현일 수 있다. 그가 딸에게 주는 자유는 정서적 연결을 유지하기 위한 타협이며, 그 타협은 가족의 긴장 속에서 ‘따뜻한 배신’이 된다. PCIT의 권위자인 Sheila Eyberg는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양육은 지적을 견디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딸을 지키려는 마음이 진심이라면, 아버지는 먼저 ‘지적받는 고통’을 통과해야 한다. 그 통과의 순간에야 비로소, 딸은 스마트폰이 아닌 ‘관계 속에서 안정감’을 배우게 된다.
당신이 지금 PCIT 코칭이나 가족 상담 앞에서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건 변화의 신호다. 지적받는 불편함은 당신이 “나쁜 아버지”여서가 아니라, 이제 진짜 관계를 배워야 할 때라는 신호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