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은 오직 세종대왕의 위대한 뜻과 우리 글, 한글의 소중함을 기리는 날이어야 한다. 그런데 올해 한글날 행사에서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이 행사 취지와는 전혀 무관한 정치적 발언을 쏟아내어 논란을 빚었다.
그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문맹 퇴치에 앞장섰다’며 찬양했고, 이어 현 정부를 비판하며 “이 정권을 END시키자”는 정치 구호를 외쳤다. 이는 단순한 발언을 넘어 공적 행사를 사적 정치의 무대로 변질시킨 행위라 할 수 있다.
한글날은 특정 정당이나 인물의 공적을 칭송하거나, 정권 교체를 외칠 자리가 아니다. 한글은 모든 국민의 언어이며, 정치적 이해관계를 초월한 문화적 자산이다. 그날만큼은 누구든 이념의 옷을 벗고, 한글의 가치와 세종대왕의 창제 정신를 되새겨야 마땅하다.
특히 문제는 역사 왜곡이다. 이승만 정권이 문맹 퇴치에 기여한 측면이 전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실제로는 그 이전에 조선어학회와 수많은 민간인, 교사들이 한글 보급 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일제강점기 탄압 속에서도 목숨을 걸고 우리 글을 지켜낸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한글날이 존재한다. 이를 외면하고 특정 인물을 영웅시하는 발언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국민의 문화적 자존심을 훼손하는 행위다.
정치인은 어디에서나 발언할 자유를 가진다. 그러나 공적 기념일에는 그 자유보다 더 큰 ‘공적 책임’이 따른다. 국민의 세금으로 치러지는 국가 기념행사는 국민 모두의 행사이지, 특정 정당의 집회가 아니다. 그런 자리에서 정치적 선동이나 특정 세력의 이익을 대변하는 언행은 국민을 분열시키고, 기념행사의 의미를 퇴색시킬 뿐이다.
한글날은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정치의 색을 덧칠한 축사 대신, 글을 사랑하고 지식을 나누는 문화의 장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말과 글을 되새기며,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가 한글 속에서 꽃피웠음을 기억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
정치가 문화의 무대를 점령하면, 남는 것은 분열뿐이다. 한글날을 정치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그 어떤 시도도 국민의 눈과 귀를 속이지 못할 것이다. 한글은 권력의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것이다.
논설위원 주경선
본사 발행인 겸 편집장
목사, 사회복지사, 심리상담사,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