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신의 문장, 인간의 서사: 독창적 문체와 언어 실험
2025년 노벨 문학상의 영예는 헝가리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한림원은 그의 수상을 발표하며 "종말론적 공포 속에서도 예술의 힘을 재확인하는 그의 강렬하고 선구적인 작품 세계" 를 높이 평가했다. 이 한 문장의 수상 이유는 그의 문학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을 정확히 짚어낸다. 그는 현대 사회의 불안과 실존적 공허를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언어의 극한을 탐구하는 실험적 문체를 통해 그 심연을 파고드는 작가다.
본 비평문은 크러스너호르커이의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그의 문학 세계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먼저 그의 작품을 지배하는 종말론적 세계관과 실존적 탐구라는 주제 의식을 살펴보고, 이어서 마침표를 거부하는 독창적인 문체와 언어 실험이 어떻게 그의 사유를 구현하는지 분석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프란츠 카프카와 토마스 베른하르트로 이어지는 중부 유럽 문학의 계보 속에서 그의 위치를 조명함으로써, 그가 동시대 문학에 던지는 묵직한 의미와 문학사적 의의를 종합적으로 평가하고자 한다. 그의 문장이 열어 보이는 미궁 속으로 들어가, 절망의 시대에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를 함께 모색해 본다.
종말론적 세계관과 실존적 탐구
크러스너호르커이 문학의 정수는 '종말론적 불안'과 '신 없는 세계에서의 의미 탐구'라는 주제에 있다. 그가 묘사하는 세계는 붕괴 직전의 위태로운 공동체이며, 그 속에서 인물들은 구원인지 사기인지 모를 상징에 매달려 필사적으로 의미를 찾으려 헤맨다. 이러한 서사는 현대 사회가 마주한 방향 상실의 위기와 깊이 공명하며, 독자들에게 단순한 문학적 경험을 넘어선 실존적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
미국의 저명한 비평가 수전 손택이 일찍이 그를 ‘현대의 종말론 대가’라 칭했듯, 그의 소설은 종말을 앞둔 사회의 혼란과 인간 내면의 황폐함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대표작 『저항의 멜랑콜리』(1989)에서는 낡고 초라한 마을에 거대한 고래 사체를 싣고 온 서커스단이 등장한다. 이 기이한 광경은 마을 사람들을 자극하여 억눌려 있던 폭력과 파괴 본능을 촉발시키고, 공동체는 걷잡을 수 없는 혼돈에 휩싸인다. 이는 권력의 공백과 집단적 광기가 어떻게 파시즘의 대두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섬뜩한 우화로 읽힌다.
최근작인 『헤르슈트 07769』(2021)는 팬데믹 직전 독일의 사회적 불안을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묘사하여 ‘위대한 현대 독일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은 그라피티 청소부로 일하는 ‘온화한 거인’이 바흐의 광팬인 네오나치 상사 밑에서 일하며 겪는 독일 작은 마을의 무정부 상태, 살인, 방화 등을 통해 현대 사회가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설정 자체가 그의 세계를 특징짓는 ‘부조리와 기괴한 과잉’의 단적인 예다.
그러나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이러한 붕괴의 풍경을 그리면서도 명확한 교훈이나 도덕적 해답을 제시하기를 거부한다. 스스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현실을 광기에 이를 때까지 탐구하는 것”이라 정의했듯, 그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대신 인간이 처한 실존적 상태를 언어를 통해 끝까지 직시하고 감당하려 한다. "예술은 우리가 처한 상실감이라는 운명에 대한 인류의 비범한 대응" 이라는 그의 말은 문제 해결이 아닌, 실존적 상태와의 처절한 대면에 그의 문학적 목표가 있음을 명확히 한다. 이러한 묵시록적 주제 의식은 독자의 숨을 멎게 하는 그의 독창적인 문체와 결합할 때 비로소 그 진가를 발휘한다.
신의 문장, 인간의 서사: 독창적 문체와 언어 실험
크러스너호르커이의 문학을 논할 때 그의 길고 복잡한 문장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문체는 단순한 스타일적 기교가 아니다. 그것은 붕괴 직전의 세계를 한 호흡 안에 담아내려는 필사적인 시도이자, 혼란스러운 현실의 복잡성을 언어적으로 구현하려는 그의 세계관 그 자체다.
그는 일찍이 마침표가 "인간이 아닌 신에게 속한 것" 이라고 단언했다. 이러한 신념처럼 그의 문장은 전통적인 구두법을 거부하며 끊임없이 이어지고, 스스로를 수정하며 나아간다. 그의 오랜 번역가인 조지 서테스가 이를 "느리게 흐르는 용암 같은 서사" 라고 묘사했듯, 그의 문장은 독자를 압도하며 서서히 잠식해 들어온다. 이 언어 실험은 데뷔작부터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대표작 『사탄탱고』(1985)에서는 일출을 묘사하는 단 하나의 문장이 한 페이지에 걸쳐 이어지며, 그와 협업한 벨라 타르 감독의 영화판은 7시간이라는 상영 시간으로 그의 타협 없는 미학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최근작인 『헤르슈트 07769』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소설 전체가 단 하나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처럼 "화강암처럼 빽빽한" 문장들은 독자에게 편안한 독서를 허락하지 않는다. 대신, 독자는 현실 세계의 압도적인 복잡성과 혼란을 문장 속에서 그대로 체험하게 되며, 문장의 미로를 헤매는 동안 인물들의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내면으로 깊이 몰입하게 된다. 이는 다른 어떤 소설에서도 경험하기 힘든 강렬한 미학적 체험을 선사한다.
그렇다면 이토록 독창적이고 강렬한 문체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그의 문학적 뿌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속한 중부 유럽 문학의 전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의 서사는 고립된 천재의 산물이 아니라, 깊고 어두운 문학적 계보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카프카와 베른하르트의 후계자: 중부 유럽 문학의 계보
노벨상 위원회는 크러스너호르커이를 "프란츠 카프카에서 토마스 베른하르트로 이어지는 중부 유럽 전통의 위대한 서사 작가" 라고 명명했다. 이는 그의 문학사적 위치를 규명하는 가장 중요한 평가다. 그는 단순히 헝가리 작가를 넘어, 20세기 내내 유럽의 정신사를 지배해 온 거대한 문학적 흐름의 적통을 잇는 후계자로 공인받은 것이다.
그가 속한 전통의 핵심은 노벨상 위원회가 언급한 "부조리와 기괴한 과잉" 이라는 특징으로 요약된다. 거대한 권력 구조 앞에 선 무력한 개인, 비논리적이고 기괴한 상황, 끝없는 독백과 강박적 사유 등은 카프카와 베른하르트로 대표되는 이 전통을 관통하는 주요 모티프이며,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작품 세계에서도 고스란히 발견된다. 공산주의 치하 헝가리에서 보낸 성장기와 유대인 중산층 가정이라는 배경은 그의 문학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억압적인 체제 속에서 경험한 개인의 소외와 실존적 불안은, 관료주의의 미로 속에서 고뇌했던 카프카나 역사적 트라우마에 평생 시달렸던 베른하르트의 주제 의식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러나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이 위대한 전통을 단순히 계승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중국과 일본 등 동양을 여행한 경험을 통해 얻은 "더욱 사색적이고 정교하게 조율된 어조" 를 자신의 문학에 녹여냈다. 이를 통해 그는 중부 유럽 특유의 강박적이고 절망적인 세계관을 넘어서, 보다 보편적이고 명상적인 차원으로 자신의 문학 세계를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이처럼 그는 카프카와 베른하르트가 쌓아 올린 문학적 유산을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동시대의 감각과 자신만의 고유한 체험을 결합하여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그의 문학사적 위상은 바로 이 지점에서 확고해진다.
절망의 시대, 예술의 힘을 재확인하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문학은 붕괴하는 세계의 풍경을 집요하게 응시하는 종말론적 주제 의식, 언어의 관습적 한계에 도전하는 실험적 문체, 그리고 카프카로부터 이어지는 중부 유럽 문학 전통의 창조적 계승이라는 세 가지 축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이 요소들을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동시대 어떤 작가와도 다른 자신만의 미학적 성취를 이루어냈다.
노벨상 위원회가 그의 문학이 "종말론적 공포 속에서도 예술의 힘을 재확인한다" 고 평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작품은 절망적인 현실에 대해 쉬운 위로나 값싼 희망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혼돈과 부조리로 가득 찬 세계를 외면하지 않고, 언어라는 유일한 무기를 통해 그것을 끝까지 파고들어 독자가 직시하게 만든다. 그 처절한 직시의 과정 속에서, 비록 해답을 찾지는 못할지라도, 상실의 운명을 감당하려는 인간의 존엄성과 예술의 존재 이유가 역설적으로 빛을 발하는 것이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는 현실을 ‘광기에 이를 때까지’ 파고드는 작가다. 그의 문학은 우리 시대의 가장 어두운 심연을 비추는 거울이며, 그렇기에 동시대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그의 노벨상 수상은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예술의 진정한 역할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되묻게 하는 중요한 문학사적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