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보고서] 중국의 '중추절', 한국의 '추석': 달빛 아래 다른 소원…'신세대 유커'가 한국에서 찾는 것은?
2025년 9월 29일, 서울 — 중국의 중추절(中秋節) 연휴를 맞아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 관광객들의 모습이 과거와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과거 대형 버스를 타고 면세점을 순회하던 '쇼핑 단체 관광'은 옛말이다. 이제는 한국의 조용하고 안전한 ‘일상 문화’를 체험하고, 드라마에서 보던 ‘소박한 낭만’을 찾아 나서는 ‘경험형 개별 관광객(散客, 싼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중국의 주요 언론 및 여행 플랫폼들은 이러한 변화를 집중 조명하며, 한국 여행의 새로운 매력을 분석하고 있다.
Part 1. 중추절과 추석, 같은 달 아래 다른 풍경
중국 언론들은 먼저 한국의 추석 문화가 중국의 중추절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며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있다. 중국의 대표적인 뉴스 통신사인 신화사(新華社)와 여행 전문 매체인 携程(씨트립) 등은 양국 명절의 차이를 '달빛 아래 다른 소원'이라는 시각으로 설명한다.
달의 의미: '단결'의 월병 vs '풍요'의 송편
가장 큰 차이는 명절의 핵심 의례다. 중국의 중추절은 달(月亮)**에 대한 제사가 중심이다. 이는 항아분월(嫦娥奔月) 신화와 엮여 보름달의 둥근 모양이 가족의 단결과 원만함을 상징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중국에서는 둥근 월병(月餠)을 가족들이 똑같이 나누어 먹는 것이 중요한 의식이다. 이는 '집안 식구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으면 하는 염원'을 나타낸다.
반면, 한국의 추석은 조상(祖先)에 대한 차례와 성묘가 가장 중요하다. 중국의 인민일보(人民日报)는 한국의 추석을 보도하며 "한국 추석은 조상에게 햇곡식으로 정성껏 음식을 바치는 풍년 의례적 성격이 강하며, 달맞이는 부가적인 행사"라고 분석했다. 한국의 대표 음식인 송편을 '앞으로 가득 차오르는 달처럼 번성하라'는 의미를 담아 반달 모양으로 빚는 문화는 중국 독자들에게 흥미로운 차이점으로 다가온다. 한국은 조상을 통해 풍요를 기원하고, 중국은 달을 통해 화합을 기원하는, 근본적인 문화적 지향점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명절의 무게: 긴 여정의 '귀성길' 낭만
중국은 중추절 연휴가 비교적 짧고, 10월 초 국경절 연휴가 더 길어 '민족 대이동' 현상은 국경절에 집중된다. 반면, 한국의 추석은 전국민이 고향을 향해 대규모 이동하는 '귀성(歸省)' 문화가 살아있다.
중국의 젊은 세대 유커들은 한국 드라마에서 본 명절의 '긴 귀성길' 풍경이나, 한복을 입고 차례를 지내는 가족의 모습을 신선한 문화적 체험으로 여긴다. 중국의 유명 여행 블로거들은 "한국의 추석 연휴는 도시가 조용해져 오히려 서울의 숨겨진 명소와 여유를 즐기기 좋다"고 조언하며, 한국의 '정적이고 가족 중심적인 명절 문화'가 새로운 여행 매력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Part 2. 중국 Z세대 유커, 한국의 '진정성'을 사다
최근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은 명품 쇼핑 매장 대신 한국인의 일상 공간과 문화 예술 시설로 향하고 있다. 중국의 최대 여행 플랫폼 중 하나인 '마펑워(马蜂窝)'의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2024년 이후 한국을 찾는 중국인들의 검색 키워드는 '화장품', '명품' 대신 '미술관', '사찰', '동네 맛집' 등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1. '힐링'과 '고요함'의 상징: 사찰 순례
가장 이례적인 인기 행선지는 ‘사찰(寺刹)’이다.
한국관광공사가 인용한 SNS 분석 결과에 따르면, 중국인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한국 여행지는 ‘사찰’이었다. 경쟁이 치열하고 스트레스가 높은 중국 사회의 젊은 세대에게 한국의 사찰은 '정신적 도피처'로 인식되고 있다.
신화망(新華網)의 기사는 "한국의 사찰은 단순히 불교 건축물이 아닌, 도시 속의 고요한 휴식처이자 한국의 전통 미학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서울 근교의 봉은사나 북한산 사찰, 혹은 지방의 고즈넉한 사찰에서의 경험은 이들에게 ‘고요함 속의 힐링(静心治愈)’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중국 대도시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정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이 반영된 결과다.
2. '드라마 감성'의 완성: 소박한 미식 체험
과거의 유커들이 갈비나 삼계탕 등 코스 요리를 선호했다면, 지금의 젊은 유커들은 ‘드라마 주인공처럼 먹기’를 원한다.
중국 최대 SNS 중 하나인 '샤오홍슈(小红书)'에는 ‘한국 포차에서 소주 마시는 법’이나 '편의점 라면 끓여 먹는 꿀팁' 등 지극히 일상적인 경험에 대한 공유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중국 최대 포털 사이트 바이두(百度)의 여행 칼럼은 "한국 드라마에서 보던 퇴근길의 소주 한 잔과 포장마차의 분위기는 중국 젊은이들에게 '진정한 한국의 낭만'으로 여겨진다"고 분석했다. 안전한 치안 덕분에 밤늦게까지도 자유롭게 길거리 음식과 술 문화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은 중국 관광객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3. 안전과 '편의점 왕국'의 매력
중국 언론들은 한국의 높은 ‘치안 안정성’을 한국 여행의 큰 장점으로 꼽는다.
CCTV 뉴스 등은 한국을 "밤에도 여성 혼자 거리를 걸어도 불안하지 않은 국가"로 소개하며, 이러한 안전성이 개별 자유여행을 선호하는 유커들을 끌어들이는 핵심 요소라고 강조한다.
또한, 한국의 '편의점 왕국' 문화 역시 중국인들에게 큰 공감을 얻고 있다. 한국의 편의점은 단순한 상점을 넘어, 24시간 식사와 휴식, 심지어 간단한 환전까지 가능한 ‘만능 라이프스타일 센터’로 인식된다.
중국의 한 여행 매체는 "한국의 편의점은 밤늦게 혼자 여행하는 사람에게도 심리적 안정을 주는 베이스캠프"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Part 3. 새로운 시대의 한중 관광: '정체성 찾기'의 교류
결론적으로, 중국인 관광객의 한국 방문 트렌드 변화는 단순히 '소비'를 넘어 '정체성 찾기'의 문화 교류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의 경제 성장이 가져온 여유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Z세대는 한국의 문화 콘텐츠를 통해 본 '세련되면서도 소박한 아시아적 라이프스타일'을 직접 체험하려는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매체들은 한국이 이러한 새로운 트렌드를 지속적으로 흡수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대형 쇼핑몰 위주의 관광 인프라가 아닌, 지역의 고유한 매력과 개별 여행객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다. 이는 한국 관광 산업이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성장을 도모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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