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정의 인문학칼럼①] 영화 '아이 캔 스피크'가 던지는 인권감수성의 시선

편견의 벽을 허무는 성장의 언어, 영화 속 마인드셋의 전환

조용한 변화의 힘, 이해하려는 마음이 만드는 공감의 연결

타인을 바라보는 ‘맥락의 눈’이 곧 인권감수성의 출발점이다

영화인문학 인권강사 주민정(크레센티아 대표)  이미지출처_한국CS경영신문

영화 <아이 캔 스피크>를 보면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하게 됩니다. "같은 사람인데, 왜 처음과 끝에 이렇게 다르게 보일까?" 처음에 "도깨비 할매", "악성 민원인"으로만 보이던 옥분 할머니가,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용기 있는 인권운동가", "따뜻한 이웃"으로 보입니다.

 

옥분 할머니가 변한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그녀를 보는 시선이 변한 것일까요?
이 질문은 결국 ‘인권감수성’의 출발점에 놓인 물음이기도 합니다.

 

◆ 라벨이 아닌 이야기로 보는 시선

스탠퍼드대 캐럴 드웩 교수가 제시한 ‘마인드셋 이론’은 이 변화를 흥미롭게 설명합니다. 그녀는 사람을 세상을 보는 두 가지 태도로 구분했습니다. 고정 마인드셋(Fixed Mindset)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이고, 성장 마인드셋(Growth Mindset)은 “사람은 언제나 배우고 변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고정 마인드셋은 타인을 ‘라벨’로 봅니다. “저 사람은 원래 그래.” “성격은 안 변해.” 이런 말은 타인의 변화 가능성을 차단하고, 그를 하나의 이미지로 고정시킵니다. 반면 성장 마인드셋은 타인을 ‘이야기’로 봅니다. “왜 저렇게 행동할까?”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즉, 맥락을 보려는 마음입니다. 상대의 배경과 경험을 이해하려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 하나는 마인드셋은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화 속 민재가 바로 그 변화를 보여줍니다.

 

◆ 고정된 시선이 만들어낸 라벨

명진구청에 새로 부임한 민재는 원칙을 중시하는 성실한 공무원입니다. 첫 출근날, 동료들은 말합니다. “도깨비 할매 조심해. 악성 민원인이야.” 민재는 아직 옥분과 어떤 대화도 나누지 않았지만 이미 ‘문제적 인물’이라는 정보를 입력받습니다. 그 순간 라벨이 붙습니다.

민재는 규칙과 절차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인물입니다. 그런 그에게 ‘계속해서 민원을 넣는 노인’은 단순히 ‘불편한 존재’일 뿐입니다. 이것이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의 전형입니다. 이미 정한 판단을 뒷받침하는 정보만 보게 되는 심리. 결국 민재의 머릿속엔 “역시 도깨비 할매답네.”라는 인식이 굳어집니다.

사회적 낙인, 개인적 성향, 그리고 인지적 편향. 이 세 가지가 얽히며 완벽한 고정 마인드셋이 형성됩니다. 그 시선 안에서 옥분은 변할 수 없는 사람, 이해할 필요 없는 사람으로 남습니다.

 

◆ 균열의 시작 : 라벨 뒤의 사람을 보다

하지만 변화는 아주 작은 틈에서 시작됩니다. 민재는 어느 날 우연히 그 ‘도깨비 할매’가 동생 영재에게 밥을 차려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제 민재의 머릿속에서는 ‘악성 민원인’이라는 이미지와 ‘다정한 이웃’이라는 행동이 충돌합니다. 이 모순이 마음속 불편함을 만들어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고 부릅니다. 이 불편함은 민재가 자신의 믿음을 수정하게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그는 옥분의 영어 선생이 되기로 합니다. 처음엔 단순한 감사의 표현이었지만, 영어 수업을 통해 두 사람의 관계는 조금씩 달라집니다. 민재는 옥분의 노력과 성실함을, 그리고 이웃을 챙기는 따뜻한 마음을 보게 됩니다. 이 과정이 바로 편견이 깨지는 순간입니다.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관계의 힘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 맥락이 드러나는 순간, 사람은 새롭게 보인다

민재는 어느 날 옥분이 영어를 배우려는 진짜 이유를 알게 됩니다. 이 순간, 민재에게 모든 것이 재해석됩니다.  고정 마인드셋으로 본 옥분은 '도깨비 할매', '악성 민원인', '끊임없이 불평하는 노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성장 마인드셋으로, 맥락을 포함해서 본 옥분은 완전히 다른 사람입니다. 70년간 상처를 안고 살아온 생존자, 자신과 같은 피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동네를 안전하게 만들려는 활동가, 친구의 유언을 지키려는 의리 있는 사람, 정의를 위해 용기를 내는 인권운동가, 민재의 동생을 챙기는 따뜻한 이웃. 같은 사람인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됩니다.

이렇듯 '라벨’로 보던 시선이 ‘맥락’을 포함한 시선으로 바뀌는 순간, 사람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것이 바로 맥락의 힘(Power of Context)입니다. 맥락이야말로 인권감수성의 핵심 언어입니다. 사람의 행동에는 언제나 이유가 있고, 그 이유를 보려는 마음이 곧 존중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 이해는 양방향이다 : 조하리의 창이 말하는 것

그렇다면 마인드셋 전환은 이해하는 쪽만의 몫일까요? 이해는 일방통행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옥분이 자신의 과거를 드러낼 용기를 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심리학의 조하리의 창(Johari Window)에 따르면,  우리가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부분과 남이 아는 부분은 다릅니다. 옥분의 위안부 경험은 오랫동안 ‘나만 아는 영역’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 영역을 세상에 열었을 때, 비로소 공동체가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진정한 이해는 한쪽의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해하려는 노력과 이해받으려는 용기가 만날 때, 관계는 변하고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집니다.

 

◆ 인권감수성 : 이해의 눈을 여는 힘

인권감수성이란 ‘불쌍한 사람을 돕는 마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타인을 라벨로 보지 않고, 이야기로 바라보는 태도’이며, ‘이해하려는 노력과 이해받으려는 용기가 만나는 지점’입니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타인을 성장 마인드셋으로 보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타인이 나를 이해할 수 있도록 내 이야기를 열고 있는가?

 

우리는 종종 누군가를 너무 쉽게 판단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언제나 ‘이야기’로 이루어진 존재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려는 마음,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꺼낼 용기. 그 두 가지가 만나면, 고정된 시선은 녹고 진짜 이해의 눈이 열립니다.

 

필자 소개

필자는 교육전문기업 크레센티아(CRESCENTIA) 대표로서 HRD 전문강사이자, 조직과 개인의 성장을 돕는 교육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소통 인문학 강사로서 영화 속 장면에서 인간의 마음을 읽고, 관계와 이해의 언어를 탐구하는 강연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대한인식생명교육 사회적협동조합 KALAPE의 초대 전임교수로 선임되어, KALAPE와 협력하여 전국에서 고독사 예방, 생명존중, 자살예방, 게이트키퍼, 법정의무, 학대예방 등 다양한 인식교육 및 지도자 양성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작성 2025.10.08 18:07 수정 2025.12.06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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