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착한 언니의 미소 속, 보이지 않는 ‘결핍’
“동생이랑 자는 게 좋아요.” 이 말은 표면적으로는 따뜻하고 순한 감정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나도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이 숨어 있다. 초등학교 5학년의 언니는 32개월 된 동생을 사랑하지만, 동시에 ‘엄마의 시선이 자신에게 머물지 않는다’는 현실을 감지하고 있다. 심리학자 D. Winnicott(1965)은 『The Maturational Processes and the Facilitating Environment』에서 *“아이의 ‘착함’은 종종 부모의 애정 결핍에 대한 적응적 반응이다”*라고 지적했다. 즉, ‘좋은 아이’로 남으려는 행동은 종종 사랑을 얻기 위한 전략이며, 감정적 결핍을 무의식적으로 메우려는 시도일 수 있다. 언니는 자신이 ‘엄마에게 부담되지 않는 존재’가 되려 노력하면서, 스스로를 조용히 밀어낸다. 동생을 사랑하는 말은 사실상 ‘엄마에게서 멀어진 자신’을 견디는 언어적 방패일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동생이 좋아요’라는 말의 따뜻함 뒤에 숨은, 조용한 외로움이다.
애착이론으로 본 초등생의 감정 구조
영국의 정신분석가 John Bowlby의 애착이론(Attachment Theory)은 아이의 정서적 안정이 부모의 정서적 가용성(emotional availability)에 따라 형성된다고 설명한다. Bowlby(1988)는 “Secure attachment provides the foundation for emotional independence”라며, 안정 애착이 아이의 자율성과 정서적 회복탄력성의 기초가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언니가 경험하는 가정 내 환경은 ‘엄마의 시선이 동생에게 집중된 상황’이다. 이때 아이의 무의식은 ‘정서적 불안’을 경험하며, 자신이 사랑받기 위해 해야 할 역할을 본능적으로 찾아 나선다. 그 결과, 아이는 “동생을 잘 돌보는 언니”라는 역할에 몰입한다. 이것은 겉으로는 성숙함처럼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엄마의 관심을 유지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다. 하버드대학교 발달심리학 연구팀(Mikulincer & Shaver,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2019)은 형제관계 속 ‘보상적 애착 보유(compensatory attachment) 현상을 언급했다. 즉, 부모의 정서적 결핍이 있을 때 아이는 다른 대상(동생, 반려동물, 친구 등)을 통해 애착 욕구를 충족하려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동생과 함께 자는 언니’의 행동은 단순한 돌봄이 아니라, 자신 안의 불안을 달래는 애착 대체 행위일 수 있다.
‘보호자 역할’의 그림자: 성숙함 뒤의 불안
심리학에서는 이를 Parentification(부모화) 현상이라고 부른다. 이는 아이가 부모나 다른 가족을 정서적으로 ‘돌보는 역할’을 스스로 떠맡게 되는 현상이다. 미국 가족치료학자 Jurkovic(1997)은 “Parentified children often learn to suppress their own needs to maintain family harmony”라고 말하며, 부모화된 아이가 가족의 평화를 위해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는 경향을 지적했다. 언니는 ‘좋은 딸’, ‘착한 언니’의 가면을 쓰며, 자신의 불안을 감춘다. 이런 아이는 표면적으로는 독립적이고 다정하지만, 정서 내면에는 자기부정(self-negation) 과 돌봄 피로(caregiver fatigue) 가 쌓인다. 한국 임상심리학회지(2021)의 연구에 따르면, 초등 고학년 아동 중 형제 돌봄 역할을 자주 하는 아동은 그렇지 않은 아동보다 불안지수가 1.8배 높게 나타났다. 즉, ‘성숙한 행동’은 종종 ‘어린 마음의 방어기제’일 수 있다. 이러한 불안은 청소년기로 이어지며, ‘관심을 받지 못하면 존재 의미를 잃는다’는 정서적 불안정성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언니가 동생 곁에서 잠드는 이유는,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누군가 곁에 있어야 안심되는 마음’ 때문이다. 그 곁이 엄마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안타까운 심리적 타협이다.
언니의 외로움을 읽어주는 어른의 언어
이때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지원은 “교정(correction)”이 아닌 “공명(attunement)”이다. 아이의 말과 행동을 교정하려 하기보다, 그 속에 담긴 감정에 공명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생이랑 자는 게 좋구나”라고 받아준 뒤, “그런데 가끔은 엄마랑 자고 싶을 때도 있지?”라고 부드럽게 덧붙이면, 아이의 마음은 안전하게 열릴 수 있다. 이런 대화법은 정서적 반영(reflective listening) 이라 부르며, Yale Child Study Center의 연구(Child Development, 2020)에 따르면, 이해받는 경험을 한 아이는 정서 안정성이 40% 이상 증가한다고 보고되었다. 즉, ‘잘 자는 법’을 가르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을 읽어주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언니의 외로움은 ‘잘못된 행동’이 아니라 ‘도와달라는 신호’다. 아이의 무의식은 늘 말을 한다. 단지, 어른이 그 언어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가 문제일 뿐이다.
언니의 마음을 품는 시간
‘동생이 좋아요’라는 말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예쁜 거짓말이다. 그 말 속에는 사랑과 동시에 결핍이 있고, 책임감과 함께 외로움이 숨어 있다. 그러나 아이는 그것을 스스로 설명할 언어가 없다. 그렇기에 어른이 먼저 언어를 빌려주어야 한다. “네가 참 따뜻한 언니구나, 그런데 엄마는 네 마음도 참 소중해.” 이 한마디가 언니의 내면에서 얼어붙은 감정을 녹일 수 있다. 부모가 아이의 무의식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그 아이가 외로움을 견디며 성장하지 않도록 손을 내미는 일이다. 언니의 착함을 칭찬하기보다, 그 안의 외로움을 이해할 때, 비로소 아이는 “동생을 사랑하면서도 나 자신도 사랑할 수 있는 법”을 배운다.
아이의 말 한마디 속에도, 아직 다 자라지 못한 마음의 언어가 숨어 있습니다. 그 마음을 들어주는 어른이 되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