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은 사랑도 체력이야.”
이 문장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현대사회의 정서를 가장 잘 설명하는 은유다. 사랑이 더 이상 낭만의 언어가 아니라 ‘감정 노동’의 다른 이름이 된 시대. 사람들은 관계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기보다, 지치고, 번아웃되고, 무기력해진다. 우리는 사랑을 주는 일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동시에 사랑받지 못한다는 결핍감에 시달린다.
SNS는 매 순간 감정을 표현하도록 강요한다. ‘좋아요’는 인정의 단위가 되었고, 메시지의 응답 속도는 관계의 온도를 측정하는 척도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디지털 친밀감은 진정한 정서적 교류를 대체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더 많이 연결될수록 더 고립되고, 더 자주 대화를 나눌수록 더 공허해진다. 이것이 바로 ‘감정의 과잉’이 낳은 역설이다.
사랑이 피로한 이유는 감정이 일방적으로 ‘소비’되는 구조에 있다. 관계를 맺을 때마다, 우리는 에너지의 공급자이자 수요자가 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관계는 주고받음의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 감정의 불균형은 피로를 낳고, 피로는 냉소를 부른다. 결국 사람들은 말한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 않다.”
이것이 오늘날 사랑의 피로 사회가 직면한 현실이다.
정서의 붕괴 : 돌봄이 노동이 된 순간
돌봄은 인간 관계의 근본적인 형태였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돌봄이 ‘서비스’로 전락했다. 아이를 돌보는 일, 노인을 간호하는 일, 마음을 위로하는 일 모두가 감정 노동의 형태로 분류된다. 사회는 감정을 상품화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직업으로 수행한다.
‘돌봄 노동자’라는 단어가 자연스러워진 현실은 감정의 구조가 산업화된 시대를 보여준다.
사랑이 자발적 감정이었다면, 돌봄은 이제 ‘역할’이 되었다.
병원, 요양원, 상담센터, 고객센터에서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타인의 감정을 다뤄야 한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감정은 돌봄 받지 못한다. 이 구조 속에서 감정은 점점 고갈된다. 감정이 더 이상 관계의 본질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의 부속품이 되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단지 직업적 영역의 문제가 아니다. 가족 안에서도, 친구 관계 안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돌보는 자’와 ‘돌봄 받는 자’의 역할을 오간다. 부모는 자녀를 돌보며 번아웃되고, 친구는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며 감정의 잔고를 잃는다. 결국 ‘감정의 균형’이 깨진 곳에서 돌봄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닌 의무가 된다.
공감의 한계 : 타인의 고통에 무뎌진 우리
공감은 인간의 본능이라 믿어왔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그 본능마저 점차 퇴화시키고 있다.
전쟁, 재난, 범죄, 혐오, 분노가 매일같이 뉴스 화면을 뒤덮는다. 타인의 고통이 너무 빈번하게 노출되면서, 사람들은 무뎌지고 둔감해진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감정 마비(emotional numbness)’라고 부른다. 공감의 에너지가 소진된 상태다.
이 시대의 공감은 종종 ‘의무’처럼 수행된다.
사회적 이슈가 터질 때마다 우리는 ‘공감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누군가의 아픔을 느끼지 못하면 냉혈한이 되고, 느끼면 감정이 과부하된다. 결국 사람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감정을 차단한다. 이것은 개인의 방어기제가 아니라, 사회가 감정적으로 과로한 상태임을 보여주는 신호다.
문제는 공감이 피로해질수록 인간관계는 얕아지고, 사회적 연대는 약해진다는 것이다. 감정의 과부하와 마비는 동시에 존재한다. 한쪽에서는 과잉 감정이 폭발하고, 다른 쪽에서는 무감각이 만연한다.
결국 사회 전체가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진동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감정의 재균형 : 사랑을 다시 회복하는 사회적 기술
이제 필요한 것은 감정의 ‘재균형’이다. 사랑과 공감, 돌봄이 다시 건강한 순환을 이루려면, 개인의 감정만으로는 부족하다. 사회 전체의 정서적 환경이 회복되어야 한다.
첫째, 감정 교육의 확장이 필요하다.
어릴 때부터 ‘감정 관리’가 아닌 ‘감정 이해’를 배우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기쁨과 슬픔, 분노와 피로를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감정은 숨기거나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소통의 언어로서 다뤄져야 한다.
둘째, 돌봄의 사회화를 통해 감정의 부담을 나누어야 한다.
돌봄이 특정 개인의 책임으로 집중되지 않도록, 제도적 지원과 공동체적 돌봄이 강화되어야 한다.
노인 돌봄, 심리 지원, 청소년 정서 케어 등에서 공공의 역할이 중요하다.
셋째, 기술의 역할도 재정의되어야 한다.
AI와 디지털 플랫폼이 인간의 감정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 회복을 돕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온라인 상담 서비스나 정서적 피로 회복을 돕는 ‘디지털 휴식 공간’이 그 예다.
사랑을 회복한다는 것은 감정의 본래적 기능—서로를 연결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되찾는 것이다.
사회가 감정을 효율의 관점이 아닌, 존재의 가치로 다시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랑의 피로를 넘어설 수 있다.
감정의 시대를 다시 설계하다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고갈될 뿐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재충전하느냐에 있다. 사랑이 피로해진 시대를 건너는 법은 거창하지 않다. 서로의 감정을 ‘일’이 아닌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감정을 주는 것만큼 받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감정의 시대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사랑과 돌봄, 공감의 회복은 더 이상 개인의 몫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가 스스로에게 치유를 허락하는 첫 번째 걸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