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자격은 개인의 역량을 증명하는 공적지표(public indicator)이어야 한다. 그러나 국내 민간자격 시장은 양적 팽창과 관리 부실로 인해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자격증의 급증은 기술 트렌드에 편승한 상업화를 가속하며 사회적 혼란을 키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규제의 과잉이 아니라, 질적 재구조화와 공적 관리의 고도화이다.
숫자의 팽창이 가치의 하락으로 연결
2025년 8월 기준 등록 민간자격종목은 60,573개, 운영기관은 17,057개에 달한다. 생활기술, 사무관리, 심리상담, 크리에이터, 퍼스널 브랜딩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자격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정부가 신뢰성을 인증한 공인민간자격은 97종에 그친다. 자격이 많을수록 채용과 현장에서는 의미 있는 자격을 구분하기 어려워지고, 자격증으로서의 가치도 자칫 하락될 수 있다.
자격의 실효성 결여와 소비자 피해
AI 자격증을 비롯한 민간자격증의 문제는 무엇일까?
첫째, 실무성과 산업현장성이 부족하다. 상당수 자격이 직무능력표준과 연결되지 못하고 이론시험 위주로 운영된다.
둘째, 유령자격이 방치된다. 응시자나 취득자가 사실상 없는 종목이 다수임에도 존치된다.
셋째, 허위‧과장 광고가 성행한다. ‘취업 보장’ ‘단기 고소득’ 문구가 청년과 구직자를 현혹하고, 취득 후 취업 미연계나 환불 거부 등 피해가 반복된다.
넷째, 일부 대학과 교육기관의 부적절한 관행이 문제이다. 특정 민간자격 취득을 사실상 강제하거나, 관리 실적이 없는 자격증을 반복 발급하는 사례가 지속된다.
AI 자격증: 급증의 그늘
‘AI’ 명칭을 단 민간자격은 500여 종에 달한다. 5년 전보다 50배 이상 증가했으나, 실제 산업 현장에서 인정받는 자격은 극히 제한적이다. 커리큘럼의 불투명성, 운영기관의 신뢰 부족, 직무적합성 결여가 동시적으로 나타난다. 생성형 AI, 데이터 실무, AI 지도사 등 간판은 다양하나 프로젝트 기반 평가와 모델 안전성‧윤리 검증이 미흡하다. 관련성이 낮은 영역까지 ‘AI’ 타이틀을 부여하는 관행도 시장 혼란을 키운다.
그 대안은 무엇인가? - 질적 재구조화를 위한 일곱 가지
첫째, 등록·유지 요건을 성과기반으로 강화한다. 일정 기간 응시·취득 실적, 교육·시험 실시율, 현장활용 지표가 기준에 미달하면 자동 폐지한다.
둘째, 정보공시를 전면화한다. 자격별 취득현황, 활용도, 취업연계, 환불정책, 불만‧피해 통계를 표준양식으로 공개하여 누구나 비교 가능하게 한다.
셋째, 운영기관 신뢰도 등급제를 도입한다. 커리큘럼 적합성, 강사 자격, 실습 인프라, 광고 준수, 환불 이행률을 종합평가해 등급을 부여·공개한다.
넷째, AI 자격은 직무기반 표준을 마련한다. 프롬프트 설계, 데이터 정제·품질, 모델 평가·리스크, 거버넌스·윤리 등 직무단위를 정의하고 ‘이론+프로젝트+구두시험’의 삼중평가를 의무화한다.
다섯째, 허위·과장 광고를 즉시 시정하고 피해구제를 강화한다. 플랫폼과 광고매체에 공동책임을 부과하고, 환불·분쟁조정 표준약관을 의무 적용한다.
여섯째, 대학·공공교육 연계의 책무성을 높인다. 학점·비교과 연계 시 공인도, 현장성, 평가 신뢰성을 사전 심사하고 사실상 강제를 금지한다.
일곱째, 레벨·스택형 프레임워크를 구축한다. 초급(도구 활용)–중급(업무 적용)–상급(설계·감사·거버넌스)으로 단계화하고, 모듈 누적을 통해 상위 자격으로 승급되게 한다. 기관 간 상호인정 기준을 마련한다.
거버넌스와 규율의 재설계 필요
민‧관 합동 상설점검단을 설치해 온라인 모니터링과 표본 현장점검을 정례화해야 한다. 사전등록 심사와 사후성과 심사를 병행하여 설계의 타당성과 결과의 실효성을 동시에 검증한다. 혁신적 평가모델에 대해서는 규제샌드박스를 도입하되, 데이터보호와 윤리 기준을 엄격히 적용한다. 고용·교육·국가자격 데이터와의 연계를 통해 허위 실적을 차단하고 자격의 고용효과를 실증한다.
신뢰는 절차와 검증에서 비롯된다
민간자격과 AI 자격은 직업능력 개발과 사회참여 확대에 기여할 잠재력이 크다. 그러나 무질서한 난립과 관리 부실은 시장 실패와 국민 피해로 귀결한다. 등록은 더 엄격하게, 정보는 더 투명하게, 평가는 더 실무적으로, 피해구제는 더 신속하게 전환해야 한다. 자격은 상품이 아니라 공적지표이다. 공적지표의 품격을 지키는 일이 곧 시장을 지키는 일이다.
박동명
▷법학박사, 선진사회정책연구원 원장
▷한국공공정책학회 부회장
▷한국공공정책평가원 원장
▷전 서울특별시의회 보건복지전문위원, 국민대학교 외래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