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년간 경찰 제복을 입고 수많은 사건 현장을 누비며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마주했다. 그중에서도 노인의 존엄이 무너지는 순간만큼은 유독 가슴이 아팠다. 치매를 앓는 아버지를 향해 “또 왜 밖에 나왔어요!”라며 짜증을 내던 아들의 목소리, 그 말에 서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떨고 있던 아버지의 눈빛은 지금도 생생하다. 기억은 희미해져도 감정은 여전히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그 순간, “조금만 다정하게 말씀해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부탁했던 나의 말은 사실 우리 사회 전체에 던지는 질문이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노인 학대는 생각보다 흔하다. 85세 할머니가 며느리의 방임을 신고했지만 “치매 때문에 헛소리한다”는 말로 무시당한 사례, 아들에게 연금을 빼앗기고 “내가 언제 이렇게 초라해졌나”라며 눈물을 흘리던 아버지의 절망은 결코 예외적인 일이 아니다. 일상 속 무심한 차별도 마찬가지다. 계단을 천천히 내려오는 어르신에게 짜증을 내고, ATM 사용법을 모른다고 ‘느리고 쓸모없는 존재’로 치부하는 태도는 존엄을 앗아가는 또 다른 폭력이다.
어르신들이 겪는 마음의 상처는 깊은 고독에서 비롯된다. 은퇴 후 가족 모임에서 자신의 경험과 지혜가 무시당한다고 느끼는 할아버지의 “나는 이제 쓸모없는 사람인가?”라는 탄식, 독거노인의 “사람이 이렇게 혼자 살아도 되는 건가요?”라는 외로움은 우리 사회가 노인의 삶을 얼마나 쉽게 외면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의 헌신으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음에도, 돌려주는 것은 냉대와 무관심이었다.
이 현실을 바꾸는 힘은 거창한 제도보다 우리의 작은 실천에서 나온다. 어르신을 한 사람의 인격체로 존중하고, 의견을 묻고, 시간을 가지고 기다려주는 것. 약사가 처방전을 찾는 할아버지에게 짜증 대신 시간을 내어드렸을 때 “고맙습니다”라며 울먹였다는 일화는 이를 잘 보여준다. 기다림과 존중은 그분들의 존엄을 지켜주는 가장 큰 힘이다. 치매 어르신 역시 감정은 살아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뜻한 말 한마디, 예의를 담은 태도가 곧 인권 존중의 출발이다.
노인 인권은 결국 우리의 미래와 직결된다. 85세 할아버지가 남긴 “너희도 언젠가는 늙는다. 지금부터 노인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라”라는 말은 단순한 충고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향한 경고다. 지금 우리가 어르신들을 대하는 방식이 곧 훗날 우리 사회가 우리를 대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현장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은, 노인들의 삶과 지혜가 우리 공동체의 소중한 자산이라는 사실이다.
한 인권교육 참가자가 “할머니께 전화 한 통 드렸을 뿐인데 그렇게 기뻐하실 줄 몰랐다”라고 전한 소감처럼, 작은 관심이 큰 힘이 된다. 오늘부터 우리 주변 어르신들에게 조금 더 따뜻한 눈빛과 존중의 말을 건네보자. 그 작은 실천이 쌓여 우리 사회의 품격을 높이고, 모두가 존중받는 더 따뜻한 미래를 만들어갈 것이다.
[칼럼니스트 소개]

전준석 칼럼니스트는 경찰학 박사를 취득하고 35년간 경찰관으로 근무한 뒤 총경으로 퇴직해 한국인권성장진흥원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인사혁신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등에서 전문강사로 활동하며 성인지 감수성, 4대 폭력 예방, 양성평등, 리더십과 코칭, 인권 예방, 자살예방, 장애인 인식 개선, 학교폭력 예방 등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범죄심리학』, 『다시 태어나도 경찰』, 『그대 사랑처럼, 그대 향기처럼』, 『4월 어느 멋진 날에』가 있다.
경찰관으로 35년간 근무하면서 많은 사람이 인권 침해를 당하는 것을 보고 문제가 있음을 몸소 깨달았다. 우리 국민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차별이라는 것이 없어지고 인권이 성장할 것이다. 그런 생각에서 [삼시세끼 인권, 전준석 칼럼]을 연재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