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넘쳐나는 연결 속에서 고립되는 마음
“친구는 늘었지만, 진짜로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다.” 많은 이들이 소셜미디어를 하며 느끼는 모순된 감정이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 타인의 일상을 확인하고, ‘좋아요’와 댓글로 서로 반응을 주고받는다. 그러나 정작 마음이 무너질 때는 곁에 위로해줄 사람이 없다는 공허함이 찾아온다. 이것이 바로 디지털 시대의 역설이다. 연결은 더 촘촘해졌지만, 공감은 오히려 빈약해지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공감력 결핍의 정의와 증상
공감력이란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 감정에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그러나 공감력이 결핍되면 상대방의 기쁨이나 슬픔을 ‘알아채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알면서도 반응하지 않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정서적 무감각 혹은 정서적 둔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공감력 결핍의 증상은 다양하다. 대표적으로는 상대의 감정을 대화 중에 간과하거나, 부적절한 반응을 보이거나, 갈등 상황에서 타인의 입장을 고려하지 못하는 행동 등이 있다. 이런 결핍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 차원에서도 문제를 일으킨다. 예를 들어 직장 내 팀워크의 붕괴, 가정 내 소통 단절, 더 나아가 혐오 표현의 증가 같은 현상이 그 결과다.
현대 사회에서 공감력 결핍이 심화되는 이유
디지털 기술은 인간관계를 바꾸어놓았다. 문자, 채팅, 이모티콘은 빠르고 간단하지만, 얼굴 표정이나 목소리 톤 같은 비언어적 단서를 전달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대화는 점점 ‘정보 전달’에 치중되고, ‘감정의 교류’는 줄어든다.
뇌과학자들은 디지털 소통의 증가가 인간의 거울 신경세포 활성을 약화시킨다고 지적한다. 거울 신경세포는 타인의 감정을 읽고 함께 느끼게 하는 신경회로인데, 직접 대면 대화가 줄어들수록 이 신경이 덜 자극된다.
또한 현대 사회의 경쟁과 속도는 여유를 빼앗아 간다. 사람들은 타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시간’을 갖지 못한다. SNS에서는 더욱 그렇다. 1분 내외의 짧은 영상, 몇 줄짜리 게시물에 익숙해진 우리는 긴 호흡의 대화와 깊은 감정 교류에 점점 서툴러지고 있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보면, 공감력 결핍은 단순히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현상이다. 연결은 기술적으로 많아졌지만, 진짜 관계는 줄어든 사회적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공감은 타고나는가, 훈련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공감력은 잃어버리면 끝나는 능력일까? 심리학 연구는 공감이 타고난 기질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충분히 훈련 가능한 능력임을 보여준다.
첫째, 적극적 경청 훈련이 효과적이다. 상대방의 말을 끊지 않고, 요약해 다시 확인해 주는 것만으로도 공감 능력은 크게 향상된다.
둘째, 마음 챙김 훈련(Mindfulness)은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조절하는 힘을 길러 타인의 감정에 더 민감해지도록 돕는다.
셋째, 다양한 사회적 경험은 공감을 확장한다. 다른 문화, 다른 세대의 이야기를 접하며 낯선 시각을 받아들이는 훈련은 공감의 지평을 넓힌다.
특히 디지털 환경에서도 공감은 가능하다. 온라인 대화에서 단순히 ‘좋아요’를 누르는 대신 “네가 이런 경험을 해서 힘들었겠구나” 같은 구체적 반응을 남기는 것, 화상 회의에서도 의도적으로 표정과 제스처를 활용하는 것 등이 작은 훈련이 된다. 결국 공감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연결이 진짜 관계가 되려면
우리는 이제 물리적으로는 누구보다 가까운 세상에 살고 있다. 하지만 마음은 누구보다 멀어졌다. 연결이 곧 관계는 아니며, 관계가 곧 공감은 아니다.
디지털 시대의 역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것’을 넘어, 마음으로 ‘접속하는 것’이 필요하다.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때 “내가 지금 진짜 이 사람의 감정을 느끼고 있는가?”를 자문하는 순간, 공감의 회로는 다시 살아난다.
공감은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능력이다. 그것이 퇴화하느냐, 강화되느냐는 결국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