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미술에 몸 바친 이의 꿈, 강남구 역삼동 ‘수랩’ 김에스더 원장 이야기

면접·말하기 수업까지.. 그림 너머 생각을 디자인하다

▲ 강남구 역삼동 '수랩(Soolab)' 미술학원 김에스더 작가  © 수랩

 

서울 강남구 역삼동.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골목 한켠에 ‘수랩(Soolab)’이라는 이름의 작은 미술학원이 있다. 얼핏 보면 여느 입시미술학원과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느껴지는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이곳은 단순히 그림 실기만을 가르치는 공간이 아니라, 학생들과 더불어 살아갈 준비를 함께 고민하는 한 예술가의 ‘작은 연구실(lab)’ 같은 곳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작가이자 교육자인 김에스더 원장이 있다.

 

▲ 사진 = 수랩

 

김 원장이 이 학원을 시작하게 된 배경에는 한 가지 뚜렷한 확신이 있다. “무대미술은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분야가 아닙니다. 배우의 동선과 조명, 관객이 남기는 감정의 잔상까지 모두 고려하는 종합적인 예술이죠.” 그녀는 연극과 뮤지컬 무대뿐 아니라 최근에는 드라마, 영화, OTT 콘텐츠 등 다양한 매체에서 무대미술 전공자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변화에 발맞춰 수랩은 한예종 무대미술과, 중앙대 공간연출과 등 관련 학과 진학을 위한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제공하며, 전공을 깊이 이해하고 실행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 사진 = 수랩

 

김 원장이 처음부터 ‘학원’을 차린 것은 아니었다. 무대미술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입시를 앞둔 몇몇 학생을 개인적으로 지도하면서 시작했고, 진심이 담긴 교육이 입소문을 타면서 점차 수요가 늘어났다. 그렇게 2019년 정식 학원으로 확장한 ‘수랩’은 지금도 ‘소수 정예’를 원칙으로 운영된다. 학생 수를 무리하게 늘리기보다 개개인의 성장 속도와 특성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맞춤형 지도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 사진 = 수랩

 

그녀의 교육 철학은 본인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김 원장은 학창 시절부터 미술을 정말 좋아했지만, 정작 입시 과정에서는 수차례 좌절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희망하던 한예종 연극원 무대미술과 입시에서 연달아 실패를 경험하고 결국 세종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무대미술에 대한 열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스물여섯 살에 다시 수능을 치르고 한예종에 도전한 끝에 합격을 거머쥐었다. “당시 느꼈던 절실함과 치열한 분석력은 지금 학생들을 가르칠 때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경험한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학생들이 흔히 겪는 불안과 좌절을 깊이 공감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 사진 = 수랩

 

이곳의 수업은 단순히 실기 능력의 향상에만 그치지 않는다. 자기소개서 작성, 포트폴리오 구성, 면접 훈련, 말하기 수업까지 포함해 학생이 예술가로서 사고하고 말하고 표현하는 전 과정을 아우른다. “최근 미대입시는 실기력만 평가하지 않습니다. 학생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예술가로서 어떤 시각과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를 함께 묻습니다.” 김 원장은 이를 강조하며, 학생이 자기 생각을 언어화하고 논리적으로 전달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큰 비중을 둔다. 실제 수업에서는 면접 복장을 입고 모의 발표를 진행하거나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훈련을 반복한다.

 

▲ 사진 = 수랩

 

김 원장의 교육 철학은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대표적인 사례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수랩에서 2년 넘게 생활하며 한예종 입시에 도전했던 한 학생이다. 그 학생은 세 차례의 실패 끝에 중앙대 공간연출과에 수석으로 진학했지만 또 다시 도전하여 결국 한예종 무대미술과 22학번으로 입학하고 현재는 한예종 학생이며 수랩의 강사진으로 있다. 

 

▲ 사진 = 수랩

 

김 원장은 “학생 한 명의 인생을 함께 책임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깊이 깨닫게 해준 경험”이라며 “합격 여부를 넘어 학생이 스스로를 믿고 예술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말했다.

 

▲ 사진 = 수랩

 

‘수랩’이라는 이름은 ‘지킬 수(守)’와 ‘랩(lab)’의 결합어이다. 학생들이 자기 자신을 지켜내며 예술가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뜻을 담았다. 김 원장은 학원의 이름처럼 “나부터 잘하자”는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학생들에게도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확고히 세우는 과정을 강조한다. 그녀는 장기적으로 학원을 넘어 하나의 ‘학교’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예술가 양성을 위한 전문 교육은 물론, 문화예술 개론 수업과 일반인을 위한 미술 프로그램까지 아우르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일부 교육은 무료로 진행하고 싶어요. 예술 교육이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제 꿈입니다.”

 

▲ 사진 = 수랩

 

그녀가 학생과 학부모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단호하지만 따뜻하다. “고난 없는 입시는 없습니다. 때로는 외롭고 힘든 시간이 찾아오지만, 그것은 학생 혼자만의 몫이 아닙니다. 저 역시 그 과정을 함께 견디고 책임질 것입니다.” 김 원장은 지도자로서 먼저 증명하는 삶을 살겠다고 강조한다. “아이들에게만 요구하지 않습니다. 저 자신이 먼저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그녀는 면접에서 말하기, 생각을 표현하는 능력,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경험이 단지 합격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인생 전반에 중요한 자산이 된다고 덧붙였다.

 

▲ 사진 = 수랩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보니 ‘수랩’은 단순한 입시학원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예술가로 성장하기 위한 기초 체력을 다지고, 경쟁 속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지켜내는 법을 배우는 공간인 것이다. 김에스더 원장이 지닌 예술가로서의 깊이와 교육자로서의 책임감은 무대미술이라는 특수한 전공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든든한 나침반이 되고 있다. 앞으로 ‘수랩’이 지향하는 ‘작은 학교’의 꿈이 실현된다면, 이는 예술 입시 교육을 넘어 우리 사회의 문화예술 교육이 나아갈 새로운 모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수랩 블로그: https://blog.naver.com/soolab2019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soolab.2019

작성 2025.10.02 16:20 수정 2025.10.02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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