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포티(Young Forty)’
한때 '영원히 젊은 40대'라는 긍정적 뉘앙스를 담고 있었지만, 지금 온라인 공간에서 이 단어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민폐로 전락한 영포티.”, “젊은 척하는 40대.”, “그냥 아저씨일 뿐.” 영포티는 어느새 '젊은 척하는 꼰대', '2030세대를 가르치려 드는 내로남불'이라는 조롱과 낙인의 언어로 변질되었다. 한 단어가 긍정에서 비아냥으로 변화하는 과정은 현재 우리 사회의 세대 갈등이 얼마나 깊고 예민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표면적 행동으로만 소비되는 세대
세대 갈등은 오래된 사회 현상이지만, 영포티 현상은 단순한 가치관 차이를 넘어선다. 2030세대는 취업난과 불안정한 경제 상황 속에서 살아간다. 그들에게 40대의 '젊음을 흉내 내는 듯한 태도'는 현실을 모르는 철없는 몸짓으로 보인다. 반대로 40대에게 2030세대의 솔직함과 빠른 변화는 때로 '조직의 룰을 깨는 가벼움'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양쪽 모두 각자의 상처와 어려움을 안고 있지만, 서로의 맥락을 이해하기보다는 겉으로 드러난 말투와 태도만으로 즉각적으로 판단하게 되는 단절이 갈등을 심화시키는 핵심이다.
100세 할머니가 전하는 '지금을 사는' 지혜
이런 갈등 상황에서 히루마 에이코의 『100세 할머니 약국』이 주는 통찰은 특별하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이와 상관없이 지금을 사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누군가에게 어떤 생각을 전달할 때는 '상대방과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 말은 단순히 젊게 보이려는 욕망이 아니다. 현재를 이해하고 시대를 공유하려는 의지다. 저자의 '요즘 사람'이고 싶다고 고백하는 것처럼, 세대 간 대립을 푸는 열쇠는 과거 경험의 권위를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지금을 함께 살아가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참견이 아닌 관심
저자가 강조하는 또 하나의 지점은 '참견과 관심의 구분'이다. “참견은 만병의 근원입니다. 누군가를 걱정한다는 건 마음을 나누어 주는 일이에요. 그 사람이 바뀌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에요.” ‘내가 너희 나이 때는…’으로 시작하는 문장은 관심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하는 참견이다. 반대로 짧고 존중이 담긴 언어는 세대 간의 간극을 좁힌다. 저자는 이런 마음의 표현이 진정한 배려라고 말한다. "당신은 지금 그대로도 괜찮습니다."
프레임을 벗고 개인을 볼 때
'영포티'든 'MZ세대'든, 결국 그 단어 뒤에는 각자의 시간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개인이 존재할 뿐이다. 문제는 세대를 단어로 묶고 프레임에 가두려는 태도다. 세대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결국 개인에 대한 존중이다. 집단의 특성으로 개인을 재단하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을 독립된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에서 모든 변화가 시작된다. 영포티라는 단어로 40대를 일반화하거나, 요즘 애들이라는 말로 젊은 세대를 규정하는 순간, 우리는 개인의 고유함을 놓치게 된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 하는 판단 대신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이해의 여지를 두는 것, 그 작은 시선의 전환이 갈등 해소의 출발점이다.
따뜻한 시선이 필요한 시대
저자는 또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과거 혹은 미래가 아니라,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일에 얼마나 진지하게 몰두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영포티를 비웃든, '요즘 애들'을 탓하든, 모두 지금이 아닌 다른 시간에 매몰된 채 살아가는 것이다. 세대를 조롱과 낙인의 언어로 소비한다면, 결국 모두가 현재를 놓친 채 살게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따뜻한 시선이다. 세대를 나누는 단어 대신, 지금을 살아가는 개인을 바라보는 관점이야말로 새로운 공존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오늘도 시작이자 끝인 하루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지금을 사는 사람'으로서 존중할 수 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