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최진실 기자] 시인 한정찬의 삶의 시편(詩篇) 3
산촌 사계(山村四季)
봄(春)
날씨가 풀릴 무렵 언 땅에 온기 돌아
마음속 따뜻함이 전신에 퍼져왔다.
이 봄날 연장을 꺼내 농사 준비 해 본다.
빈 들녘 포롱포롱 텃새가 몰려 날고
돋아난 연둣빛이 수채화 그려댄다.
이 봄날 그리운 얼굴 떠올리며 지낸다.
흙 갈 때 몸에 스민 흙 향기 흠뻑 젖어
겨우내 시린 마음 콧등에 소멸했다.
이 봄날 밭고랑 짓다 식은땀을 흘린다.
시작이 반이라는 그 말씀 상기할 때
어느새 다 채워진 농장 안 풍경이다.
이 봄날 웃어 보는 일 보람으로 여긴다.
봄바람 보드랍게 넘나든 산천초목
복사꽃 어우러져 산마을 만화방창
이 봄날 꽃 잔치 열린 농사 일터 정겹다.
여름(夏)
신록이 우거지는 여름철 절기 동안
태풍에 폭우까지 여러 번 왔다 갔다.
한시름 놓을까 할 때 가뭄 걱정 앞선다.
열대야 기상정보 연거푸 다가올 때
생장점 멈춤 될까. 호소로 기도한다.
단비가 내릴 기대에 이상기온 보인다.
땀방울 등줄기에 흥건히 젖을 무렵
염천의 태양 불볕 정오에 떨어졌다.
숨 막힌 대기 기류는 식을 줄도 모른다.
번개가 번쩍이면 천둥이 따라와도
잠시도 못 멈추고 농작물 손질한다.
하루가 사뭇 다르게 우거지는 잡초다.
웃자라 스러지고 넘어진 작물들에
순치고 줄로 엮어 세우고 고정하면
어느새 가버린 하루 저문 줄도 모른다.
가을(秋)
갈대가 안달 나서 발 동동 구르는데
억새가 비탈에서 목이 타 울고 있다.
이 가을 목마른 날에 내 모습이 보인다.
장마에 마음마저 우울해 기웃하니
덜 여문 열매들이 쭈르르 떨어졌다.
이 가을 외로운 날에 내 마음이 보인다.
이슬에 목을 축인 갈증이 도질 무렵
풋고추 홍고추로 얼굴빛 바꿔 갔다.
이 가을 변덕의 날에 내 얼굴이 보인다.
소슬한 바람 불어 생각이 물들었고
초목도 적응하려 옷 색깔 달리했다.
이 가을 황홀한 날에 내 의지가 보인다.
상강이 지날 무렵 쓸쓸한 허전함이
늑골에 파고들어 가을을 타고 있다.
이 가을 시린 가슴에 내 사유思惟가 보인다.
겨울(冬)
눈발이 휘날리는 산하의 목가 앞에
서둘러 내달리는 싸늘한 바람이다.
이제는 겨울나무도 나이테를 감았다.
곳간에 모여있는 수거한 농작물들
창고에 가지런히 진열된 농기구들
이제는 이 한겨울을 동면하고 지낸다.
빈들에 막 달리는 바람이 요란하고
도랑에 노래하던 물소리 숨죽였다.
산에서 기어 내려온 산그늘이 짙었다.
수수밭 옥수수밭 빈 그루 서걱이고
무심히 오고 가는 산짐승 요란하다.
어쩌다 길잃은 울음 애달프게 들린다.
산골에 밤은 깊어 낮달이 종종 뜨고
휘날린 눈보라에 한겨울 깊어진다.
머잖아 봄을 그리는 겨울비가 내리리.
한정찬
· 한국공무원문학협회원, 한국문인협회원, 국제펜한국본부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원 외
· 시집 ‘한 줄기 바람(1988)’외 29권, 시전집 2권, 시선집 1권, 소방안전칼럼집 1권 외
· 농촌문학상, 옥로문학상, 충남펜문학상, 충남문학대상, 충청남도문화상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