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금의 테루아(Terroir)를 빚은 땅, 프랑스 게랑드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 지방의 게랑드(Guérande)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염전 지대다. 이곳의 천일염이 세계적인 명품으로 인정받는 데에는 지역 고유의 환경적·역사적 배경이 깊숙이 작용하고 있다.
게랑드 지역의 특징과 소금 생산 역사
게랑드 염전은 기원전 3세기 켈트족에 의해 처음 개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중세 시대 베네딕트 수도사들의 노력으로 체계화되었다고 전해진다. 이곳 염전은 점토(Clay) 바닥으로 이루어진 것이 가장 큰 특징인데, 점토층은 바닷물과 미네랄이 상호작용하는 독특한 환경을 제공해 최종 소금 결정에 미세한 회색빛과 특유의 복합적인 풍미를 더한다.
게랑드 소금은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전통 수확 방식을 고수한다. 염부(Paludier)들은 삽과 나무 도구만을 사용해 소금을 수확하며, 특히 염전 표면에 얇게 떠오르는 ‘플뢰르 드 셀(Fleur de Sel, 소금의 꽃)’은 오직 숙련된 염부의 손기술과 특정 기후 조건(잔잔한 바람과 햇살) 아래에서만 얻을 수 있는 귀한 결정이다.
게랑드 소금의 독특한 특성과 세계적 인지도
게랑드 소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플뢰르 드 셀: 수분 함량이 높고 결정이 가벼우며, 씹을 때 아삭하게 부서지는 식감이 일품이다.
셀 그라(Sel Gris, 회색 소금): 점토의 영향을 받아 회색빛을 띠며 굵고 단단하여 주로 요리에 간을 맞추는 용도로 쓰인다.
이 소금은 수십 년 전부터 유럽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마무리 소금(Finishing Salt)’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프랑스 요리 문화와 함께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그 품질과 역사가 곧 고급 식재료의 상징이 되었다.
세계적 소금이 될 수 있었던 이유
게랑드 소금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비결은 단순한 품질을 넘어선다.
핵심은 ‘플뢰르 드 셀’을 식감과 미학을 더하는 고가치 제품으로 명확히 포지셔닝하고 브랜딩한 점이다. 또한 수천 년 된 염전 역사와 수도사·염부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수확 방식을 스토리와 결합해 권위와 가치를 부여했다.
게다가 엄격한 품질 관리와 지리적 표시 보호를 통해 ‘게랑드’라는 이름 자체가 곧 품질 보증이 되도록 체계화했다.
2. 미네랄의 보고, 신안의 도전 — 한국의 천일염
한국의 천일염은 프랑스의 게랑드 소금과는 또 다른 환경적·문화적 가치를 지닌다. 특히 전라남도 신안을 중심으로 생산되는 천일염은 한국 음식 문화를 지탱해 온 근간이었다.
지리적 특징과 소금 생산의 역사
한국 천일염은 서남해안의 드넓은 갯벌 지대와 타일·옹기판 염전을 중심으로 생산된다. 이 지역 갯벌은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될 만큼 생태적 가치가 높으며, 갯벌 특유의 정화 기능과 미네랄이 바닷물에 영향을 주어 염전 소금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천일염 생산은 1907년 전후에 본격화되었고, 일제강점기 이후 정부 주도로 대량 생산 체제가 갖춰졌다. 이후 한국 천일염은 김치·간장·된장 등 발효 식품에 필수적인 재료로 사용되었으며, 이는 독특한 미네랄 성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국 천일염의 성분적 특징
게랑드 소금과 비교할 때 한국산 천일염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낮은 염도: 염화나트륨(NaCl) 함량이 약 80~88%로, 상대적으로 덜 짜고 부드러운 맛을 낸다.
높은 미네랄 함량: 특히 마그네슘이 세계 최고 수준이며, 이는 소금의 촉촉함과 짠맛 뒤의 쓴맛·단맛에 기여한다. 또한 발효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계화를 위한 과제와 방향
한국 천일염은 우수한 미네랄 성분에도 불구하고 게랑드 소금처럼 ‘명품’ 대우를 받기 위해 몇 가지 과제를 안고 있다.
브랜딩 재정립
‘김치·장 담그기용 대용량 소금’ 이미지를 넘어, ‘마그네슘이 풍부한 건강 소금’, ‘감칠맛을 살리는 마무리 소금’ 등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포지셔닝해야 한다.
환경·안전 투명성 확보
서해안 오염원 우려를 불식시키려면 바닷물·소금 제품의 중금속·미세플라스틱 오염도에 관한 연구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안전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다양한 제품 개발
함수율을 낮춘 건조 소금, 미세 입자의 특수 피니싱 솔트 등 서양 요리 트렌드에 맞는 제품을 개발해야 글로벌 셰프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한류 스토리텔링 활용
한식 세계화와 K-컬처 열풍을 기반으로 “발효 음식의 근간, K-솔트(K-Salt)”라는 브랜드 스토리를 적극 활용해 국제적 가치를 높여야 한다.
결론적으로 게랑드 소금이 ‘전통과 미식의 미학’으로 세계를 사로잡았다면, 한국 천일염은 ‘건강한 미네랄과 발효 과학’이라는 강점을 극대화해 글로벌 시장에 도전해야 한다.
맺음말
한식의 세계화는 단순히 김치와 깍두기로 완성되지 않는다. 미슐랭 쓰리 스타 셰프를 데려온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음식에는 반드시 역사와 전통을 덧입힌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며, 그 출발점은 기본 재료에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소금이다.
세계 소금 생산량은 연간 2억 5천만 톤에서 3억 톤인데, 이 중 암염 비중이 75~85%를 차지한다. 반면 천일염은 5~15%에 불과하다. 암염은 주로 공업용으로 쓰이나 정제 과정을 거쳐 식용으로도 사용되지만, 안전성 논란이 따라붙는다.
이에 비해 천일염은 믿고 먹을 수 있는 안전한 소금이다. 게랑드가 전통을 지켜 가치를 만들어낸 것처럼 우리 천일염도 자신감을 가지고 품질 개선과 연구를 통해 ‘미식 소금’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야 한다.
저자 소개
Shaka(차영기, 경기 화성)
프로 바비큐어
바비큐 프로모터 & 퍼포머
바비큐 작가
현 대한아웃도어바비큐협회 회장
Korea Barbecue University
Korea Barbecue Research & Institute
이메일: aralioch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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