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지 9년, 접수된 신고 건수는 16,000건을 넘어섰다. 수치만 보면 건조하지만, 그 속에는 우리의 일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가 담겨 있다. 예전 같으면 무심코 지나갔을 풍경들이 이제는 법의 경계에 걸려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서울의 한 교사는 명절에 학부모가 건네던 선물세트 대신 손편지를 받았다. 그는 “예전에는 선물을 거절하면 괜히 서운해할까 걱정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며 “부담이 사라진 자리에 대화와 신뢰가 남았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한 직장인은 회식 자리에서 계산서를 두 번 확인했다. 1인당 3만 원을 조금 넘자 누군가 “청탁금지법 위반 아니냐”며 농담을 던졌고, 결국 음료는 각자 카드로 계산했다. 농담 같지만, 이제는 이런 장면이 흔하다.
그러나 신고 16,000건이라는 숫자는 아직도 남은 과제를 보여준다. 한 지자체 공무원은 지역 축제 입찰 과정에서 지인의 업체를 밀어주려다 내부 직원의 신고로 적발됐다. 그는 조사에서 “예전엔 다들 이렇게 했다”고 항변했지만, 그 말이야말로 청탁금지법이 왜 필요한지를 설명해 주는 변명이었다. 또 한 시청 과장은 특정 업체 관계자와 고급 식사를 이어가다 신고를 당했다. 그는 “밥 한 끼쯤 괜찮지 않냐”고 했지만, 결국 그 밥 한 끼가 부정의 무게를 입증하는 증거가 됐다.
최근의 변화는 법령 개정에서 확인된다. 지난해 8월, 청탁금지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음식물 가액 상한이 3만 원에서 5만 원으로 상향됐다. 숫자 하나의 조정이지만, 파장은 크다. 한 지방 공무원은 “예전에는 조금만 넘어도 머뭇거렸는데, 이제는 현실과 법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완화가 관행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고, 지켜야 할 선을 명확히 하는 역할에 가깝다.

흥미로운 점은 신고 문화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내부 신고가 ‘배신’으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이제는 ‘청렴의 증거’로 받아들여진다. 공공기관은 신고 건수를 청렴 지표로 삼기도 한다. 한 지자체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는 적발되면 운이 없었다고 했지만, 이제는 내가 잘못했다고 말한다. 사회 분위기가 달라졌다.”
청탁금지법 시행 9년, 16,000건의 신고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밥 한 끼쯤 괜찮다’라는 말을 당연하게 여기던 시절에서, ‘그건 불편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로 이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아직은 완성되지 않았다. 법이 허락해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이 당연하다는 문화로 자리 잡을 때 비로소 청렴 사회는 완성된다.
청탁금지법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밥 한 끼의 무게는 얼마인가.” 이제 그 답은 숫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태도와 습관 속에서 완성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