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키멜이 쇼를 못하게 된 상황을 풍자하다
미국 수정 헌법 제1조는 특정 종교를 국교로 정하거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방해하거나, 언론의 자유를 막거나, 출판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평화로운 집회의 자유를 방해하거나, 정부에 대한 탄원의 권리를 막는 어떠한 법 제정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언론의 자유’를 중시 여겨서 희극인들은 대통령을 포함해서 누구도 풍자할 수 있다. 약자를 놀리는 것은 괴롭힘으로 처벌받는다. 하지만 액턴 경의 말처럼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한다’는 원칙은 지킨다. 그래서 전제 군주 시절에도 광대는 왕을 풍자해도 어떤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러한 역사가 내려와서 그런지 대통령을 대상으로 풍자해도 화를 내는 사람은 없고, 오히려 같이 즐기는 오바마 대통령 같은 이도 있었다.
그리고 이런 풍자 코미디가 풍부한 미국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얼마 전 사망한 찰리 커크(Charlie Kirk)라는 인물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낸 사람들이 수난을 겪는 중인 것 같다. 지미 키멜(Jimmy Kimmel)처럼 방송을 무한히 할 수 없는 일도 있고, 다양한 분야에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까지 나왔다고 한다.
찰리 커크라는 사람은 언변이 뛰어난 미국 극우라고 한다. 그의 발언을 살펴보면 보수보다 극우가 맞는 것 같다. ‘MAGA’라 불리는 미국이 위대했던 시절로 다시 돌아가자는 운동에도 열심이었다. 미국이 위대했던 시절은 인종 차별이 존재했던 시절이고, 백인 위주 사회였던 시절이기에 현재 미국의 다양성과는 거리가 조금 있다.
한국은 보수와 진보 등 정치 성향 정의가 뒤죽박죽인 것 같다. 미국은 다양한 의견만큼 다양한 집단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청교도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정도이면 보수인 것 같다. 물론 종교 박해를 피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온 유럽인 위주로 말하는 것 같아 불편하지만 현실이다. 원래 살던 다양한 인디언 부족들이 있었지만, 유럽인들은 그들을 살던 땅에서 쫓아낸 것도 모자라, 엄청난 학살을 자행했다. 그리고 현재 미국 주류에는 인디언보다 그 이민 온 유럽인 후손 더 많다.
그리고 트럼프가 불러일으킨 극우 바람이 있다.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자는 어떻게 보면 백인 위주 사회를 만들자는 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민자가 너무 많아지고 이들에게 박탈감이나 증오심을 느끼는 원래 살던 이들이 많아지면 2011년 노르웨이 테러 사건 같은 일도 일어날 수 있다. 한국이 이민자 위주 정책을 펼 때마다 이 사건이 떠오른다. 한국은 4-50대에게 아니면 청년이라 묶은 어느 나이 이외부터 노인까지는 어떠한 복지도 없다. 그런데 외국인에게 다양한 혜택을 주는 정책을 볼 때마다 역차별을 받는 느낌이 든다.
복지가 잘 된 노르웨이 영국 등을 포함 유럽에서도 이에 대한 불만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성장을 추진하던 독재 정권에서 나중에 분배해주겠다고 한 지가 벌써 몇 십년 전이고, 국민 1인당 소득이 만 불을 넘어도 사회적 안전망은 여전히 약하다. 특정 집단, 특정 연령 위주 복지만 선심성으로 할 뿐 체계적이지 못하다. 복지 사각지대 문제가 나온 게 벌써 몇 년인데 구체적 해결 방안은 요원해 보인다.
유럽은 원래 관용 원칙으로 진보적인 사고를 하는 지식인이 많은 편이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진보라면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법조인이 있을 것이다. 버니 샌더스 정치인 같은 사회주의 성향 진보가 있다. 또 미국을 대표하는 언어학자이자 지식인 노엄 촘스키는 자신을 진보라기보다 무정부주의자로 봐주길 원한다. 정말 다양한 생각이 있는 사람이 있고 소수 의견도 존재한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를 다룬 영화를 보면서 인상적이었던 게 대법관으로 근무할 때 장면이다. 진짜 보수인 대법관과 긴즈버그 대법관이 토론하면서 결론을 내리는데, 둘 다 자기주장에 확신이 있고 상대방을 이해시킬 수 있었다. 진짜 보수 진보이기에 이야기가 통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기 생각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그 장면이 인상적이고 부러웠다.
부러운 이유는 한국은 진보도 보수도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고, 다양한 의견 가운데 더 나은 의견을 골라 사회나 국가는 나아질 수 있다. 고인 물은 썩고, 성장만 추구하다 보면 뿌리가 약해 튼튼하지 못할 수 있다.
보수라고 언론이나 기존 학자들이 부르는 무리를 보면 친일이나 친미가 많다. 한국의 전통이나 가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왜 한국 보수라 부르는지 이해할 수 없다. 진보라 불리는 사람이 오히려 한국의 전통을 더 지키려 하는 희극적 상황도 개인적으로 많이 보았다.
진보는 과거를 알고 그 과거에서 낡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바꾸려 한다. 그러나 한국 진보는 과거에 존재하던 것에 잘 알지 못하고, 그러니 그게 왜 문제인지 정확히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냥 서구 사상이나 유명한 거 수입해 와서 자기 말만 하기 바쁜 것 같다. 다양한 사람과 의사소통하고 함께 살 생각이 부족해 보이는 거 같다. 그들의 말을 들으려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조차 배척해 버리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