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책길에서 마주한 장면
어느덧 여름의 뜨거움은 잦아들고, 초가을의 기운이 공기 속에 묻어나고 있었다. 점심 무렵, 잠시 산책을 나섰을 때였다. 길을 따라 걷던 내 시선을 붙잡은 것은 다름 아닌 한 마리 지렁이였다. 여름 내내 길가에서 보던 지렁이들은 대부분 뜨거운 햇볕에 말라붙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일었지만, 그저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날은 달랐다. 선선한 바람 덕분이었을까. 지렁이는 죽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작은 몸을 꿈틀거리며 땅 위를 묵묵히 기어가고 있었다. 그 순간 귀에 들어온 것은 매미의 울음소리였다. 여름 내내 쉼 없이 울어대던 매미들의 합창은 이제 힘이 빠져 있었다. 한때는 배경음을 장악하던 소리가, 이제는 여기저기서 간헐적으로 이어질 뿐이었다. 여름의 절정에서 뜨겁게 울어대던 매미는, 계절의 끝자락에서 노쇠한 몸으로 마지막 힘을 다해 울고 있었다.
대비 속에서 드러난 메시지
산책길에서 마주한 두 존재 ‘꿈틀거리는 지렁이’와 ‘노쇠해져가는 매미’는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지렁이는 계절이 바뀌며 새롭게 이어질 생명력을 상징했다. 아직 작고 느려 보이지만, 앞으로 나아가며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반면 매미는 한 계절을 마무리하며 소리로 존재를 증명했다. 힘은 약해졌지만, 끝까지 자신의 노래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 두 장면을 바라보며 나는 삶의 풍경을 떠올렸다. 어떤 이는 지렁이처럼 느리더라도 묵묵히 전진하며 새로운 출발을 준비한다. 또 어떤 이는 매미처럼 한 시절을 마무리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시작과 끝, 둘 다 소중하고 의미 있다.
우리 사회에 던지는 시사점
지렁이와 매미의 대비는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적용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흔히 지렁이와 같다. 더디고 작아 보이지만, 그 속에는 단단한 생명력이 숨어 있다. 반면 은퇴를 앞둔 세대나 한 자리에서 오래 버텨온 이들은 매미와도 같다. 비록 힘이 빠져 가더라도 그들의 마지막 울음은 후대에 남을 울림을 전한다. 문제는 우리가 매미의 울음을 ‘쇠약함’으로만 보고, 지렁이의 꿈틀거림을 ‘하찮음’으로만 치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삶의 모든 시기는 나름의 가치가 있다. 시작은 희망을 주고, 끝은 여운을 남긴다. 사회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존중할 때 건강해질 수 있다.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지금 나는 어디쯤에 서 있는가. 새 계절을 향해 꿈틀거리며 나아가는 중인가, 아니면 한 계절을 마무리하며 마지막 노래를 남기고 있는 중인가.” 독자 여러분께도 이 질문을 전하고 싶다. 우리 삶은 늘 시작과 끝의 사이 어딘가에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자리가 어디든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것이다. 지렁이의 꿈틀거림과 매미의 마지막 울음은 모두 삶의 일부다. 시작도 소중하고, 마무리도 값지다. 삶은 새로운 출발과 아름다운 마무리가 어우러진 여정이다. 어느 자리에 있든 최선을 다하는 순간, 그 자체로 빛을 낸다.
✍ ‘보통의가치’ 뉴스는 작은 일상을 기록하며, 우리 사회가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치를 전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