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굿모닝타임스) 강민석 기자 = 지구의 이상기온은 더 이상 미래의 경고가 아니다. 해마다 기록을 경신하는 폭염은 도시의 생활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특히 도심 한복판에서 수많은 시민이 오가는 지하보도와 지하철은 무더위와 맞서는 최전선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의 7~8월은 아열대 기후를 방불케 한다. 강렬한 햇볕, 숨 막히는 고온다습한 환경 속에서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흐르는 계절이 된 것이다.
필자가 거주하는 대전에서도 올해 한낮 기온이 37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이어졌다. 이때 에어컨이 가동되는 중구의 중앙로 지하보도나 서구 보라매공원 지하보도에는 더위를 피하려는 시민들이 몰리며 자연스럽게 새로운 ‘무더위 쉼터’로 자리 잡았다. 특히 인근에 거주하는 고령자들은 이곳이 여름철 최고의 피서지가 된 한 해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하 공간은 양면성을 지닌다. 한편으로는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는 피난처다. 외부보다 상대적으로 서늘해 고령자나 노약자가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보호망 역할을 한다. 하지만 밀폐 구조 특성상 열과 습기가 쉽게 빠져나가지 못한다. 인파가 몰리면 불쾌지수는 급격히 높아지고, 냉방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폭염이 길어질수록 지하 공간은 ‘최상의 피난처’이자 또 다른 ‘열섬’으로 변할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해외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싱가포르는 지하철역을 단순한 교통 시설이 아닌 재난 대응형 피난 쉼터로 설계했다. 냉방 시스템은 물론 비상 음용수와 구호물자를 비축해 폭염 재난 시 시민들이 머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는 폭염을 단순한 날씨 현상이 아니라 기후 재난으로 인식한 결과다.
우리 역시 지하 공간을 단순한 이동 통로가 아니라 기후 위기 시대의 안전 인프라로 재설계해야 한다. 폭염 경보가 발령되면 주요 지하철역을 ‘쿨링센터’로 지정해 누구나 편히 쉬어갈 수 있도록 개방할 필요가 있다. IoT 센서를 활용해 온도와 습도를 실시간 관리하고, 스마트 환기 시스템으로 쾌적성을 유지해야 한다. 지하보도와 지하상가에는 식물벽이나 미스트 분사 장치를 도입해 체감온도를 낮추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폭염은 이제 단순한 날씨가 아니라 ‘사회적 재난’이다. 지하철과 지하보도를 교통 중심 시설에서 기후 안전망으로 격상시켜야 한다. 싱가포르의 사례가 보여주듯, 지하 공간은 제대로 준비할 때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 기후 위기의 시대, 지하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도시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분기점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