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EU를 중심으로 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의 본격 시행과 더불어 전 세계적인 탄소 감축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이에 발맞춰 우리나라도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과 함께 탄소배출권거래제(K-ETS)를 중심으로 한 탄소 감축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행 제도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과 미흡한 준비로 인해 향후 우리 경제에 큰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 허점투성이 배출권거래제, 시장 왜곡을 부추긴다
K-ETS는 2015년 도입 이래 꾸준히 개선되어 왔으나, 여전히 시장의 공정성과 효율성을 저해하는 구조적인 문제들을 안고 있다.
첫째, 배출권 할당량의 적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기업들의 감축 부담을 고려해 과도하게 할당하거나, 반대로 기업의 감축 노력을 유도하기 위해 할당량을 지나치게 적게 책정하는 등 정부의 정책적 판단에 따라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기업들은 장기적인 투자 계획을 세우기 어렵고, 배출권 가격의 급등락은 시장의 불안정성을 심화시킨다.
둘째, 시장 참여자의 제한적인 규모와 투기적 요소는 시장의 왜곡을 심화시킨다.
현재 시장에는 일부 금융기관과 온실가스 배출 기업들만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들의 거래량은 전체 거래량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다.
또한, 정보 비대칭성과 투명성 부족으로 인해 일부 기업들의 투기적 거래가 시장 가격을 교란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는 결국 배출권 시장이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보다는, 투기적 이익을 노리는 일부 세력의 놀이터로 전락할 위험성을 내포한다.
2. CBAM 충격파, 미흡한 준비가 혼란을 가중한다
CBAM은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등 탄소 다배출 품목에 대해 EU 역내로 수출 시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다.
우리나라는 EU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아 CBAM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나 CBAM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준비는 여전히 미흡한 실정이다.
먼저, 중소기업의 경우 탄소 배출량 산정과 보고에 대한 이해 부족과 기술적 한계로 인해 CBAM에 대한 대응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대기업에 비해 탄소 감축을 위한 기술 도입이나 설비 투자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은 CBAM 시행과 동시에 수출 경쟁력을 잃고 생존의 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
또한, 국내 탄소 가격과 EU의 탄소 가격 간의 격차도 큰 문제다.
현재 국내 배출권 가격은 EU ETS에 비해 현저히 낮아, 우리 기업들이 EU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비용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이는 곧 우리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수출 감소와 생산량 축소를 야기할 수 있다.

3. '탄소금융'과 '기술 혁신'이라는 핵심 축의 부재
탄소 감축이라는 거대한 과제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서는 배출권거래제라는 규제적 수단 외에 '탄소금융'과 '기술 혁신'이라는 양대 축이 필수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 두 분야에서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
첫째, 탄소 감축을 위한 금융 지원 시스템이 미흡하다.
탄소 감축 설비 투자나 기술 개발에는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지만, 기업들의 자금 조달은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탄소세나 탄소관세 등 탄소 관련 수익을 감축 투자에 재투자하는 '탄소금융' 시스템을 구축해야 기업들의 부담을 덜고 실질적인 감축을 유도할 수 있다.
둘째, 탄소 감축 기술 혁신에 대한 투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수소 환원 제철 등 미래 탄소 감축 기술은 막대한 투자와 장기적인 R&D가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과 기업들의 투자는 아직 미흡한 수준이다. 이는 결국 우리 기업들이 기술 경쟁에서 뒤처져 탄소 감축 시대의 낙오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4. 혼란을 막기 위한 제언: '미완의 제도'를 완성하라.
탄소배출권거래제는 더 이상 일부 기업의 문제가 아닌, 우리 경제 전반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정부는 현행 제도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직시하고, 다음과 같은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첫째, 배출권 할당의 투명성과 시장 안정성을 강화해야 한다.
정부는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하여 배출권을 할당하고, 배출권 시장의 투명성을 높여 시장 참여자들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둘째, CBAM에 대한 맞춤형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탄소 배출량 산정 컨설팅, 기술 지원, 금융 지원 등을 확대하여 CBAM의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
셋째, 탄소금융 시스템을 구축하고 기술 혁신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탄소 감축을 위한 민간 투자를 유인하고, 미래 탄소 감축 기술 개발에 대한 정부의 과감한 지원을 통해 기술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탄소 감축 시대의 거대한 파도는 이미 시작되었다.
미흡한 준비는 곧 혼란과 위기로 이어질 것이다. 정부와 기업, 그리고 국민 모두가 탄소 감축을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미완의 제도'를 완성하여 다가올 혼란에 현명하게 대비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