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력은 괜찮은데 왜 자꾸 눈이 피곤하죠?”
이 질문, 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듣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시기능’입니다.
글로벌에서도 ‘시기능’은 중요한 건강 척도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 특히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기능을 단순한 '눈 문제'가 아닌 삶의 질(QoL), 학습, 인지 능력, 정서 발달을 좌우하는 중요한 지표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초등학교 입학 전, 일반 시력검사 외에도 시기능 중심 검안 평가를 시행하는 주(州)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시력이 정상이더라도 시기능에 문제가 있으면 학습 장애나 집중력 저하, 두통 같은 증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미국 검안협회(AOA)에 따르면 학습 부진을 겪는 아동의 최대 60%가 시기능 이상을 가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또한 유럽에서는 고령 인구의 시기능 저하가 치매 발병률과 연관되어 있다는 연구도 계속 발표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시기능은 정신 건강, 학습, 인지 기능, 노화와 연결된 글로벌 보건 트렌드의 핵심 키워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기능’이란 도대체 뭘 말하는 걸까요?
많은 사람들이 시기능을 시력과 혼동하지만 둘은 분명히 다릅니다.
시력은 '얼마나 선명하게 보이느냐'를 의미하지만 시기능은 '어떻게 보고, 어떻게 처리하느냐'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시기능은 다음과 같은 기능들로 구성됩니다.
· 양안 협응력 : 두 눈이 동시에 같은 목표물을 정확히 보는 능력
· 초점 조절력 : 가까운 것과 먼 것을 빠르게 전환하며 초점을 맞추는 능력
· 시지각 : 눈으로 본 정보를 뇌에서 해석하고 정리하는 능력
· 안구운동 : 줄을 따라 책을 읽거나 움직이는 물체를 따라가는 능력
시기능이 저하되면 시력이 1.0이나 1.5로 ‘정상’이어도 글자가 튀거나 흐려지고, 오래 집중해서 보기 힘들며 피로감이나 두통이 자주 생깁니다. 이 기능은 안타깝게도 건강검진이나 일반 안경점 검사로는 확인되지 않으며 오직 전문적인 시기능 평가를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기능은 단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과 평가를 통해 개선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시력 1.5인데도 눈이 흐릿하다면? 시기능과 시력은 다르다.
사람들은 ‘시력’만 좋으면 눈에 문제가 없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실은 그 믿음이 문제의 시작입니다. 시력은 말 그대로 ‘정적인 시야의 선명도’일 뿐입니다.
반면 우리는 실생활에서 고정된 물체만 보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글자, 빠르게 전환되는 장면, 여러 거리의 물체를 동시에 보고 인지합니다. 이걸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시기능입니다.
예를 들어 책을 읽을 때 한 줄을 끝까지 읽지 못하고 눈이 튀는 현상, 화면을 오래 보면 초점이 나가는 증상, 또는 줄 바꿈이 어려운 증상은 단순한 시력 문제가 아니라 시기능 저하의 대표적인 신호입니다.
이런 증상은 아이에게는 학습 부진으로, 직장인에게는 업무 피로와 집중력 저하로, 노인에게는 인지 기능 저하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은 이를 '눈이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깁니다.
실제로는 시기능이 무너지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눈은 혼자 보지 않는다, 시기능은 전신 건강과 연결된다
시기능은 눈의 능력뿐 아니라 뇌의 시각 처리 기능과 밀접히 연결된 시스템입니다.
눈은 ‘보는 기관’이 아니라 뇌와 연결된 복잡한 센서 시스템의 일부라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양안 협응이 안 되는 사람은 두 눈이 서로 다른 곳을 보게 되어 시각적 혼란을 겪습니다.
이럴 때 뇌는 둘 중 하나의 눈에서 오는 정보를 억제하거나, 두 개의 상이 겹쳐 보이게 만듭니다.
이로 인해 편두통이나 어지럼증 등 다양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또한 시기능은 자세와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고개를 항상 숙이고 책을 읽거나 스마트폰을 보는 자세는 안구 움직임의 균형을 깨뜨리고 시지각 정보를 왜곡시킬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시기능 저하는 단순한 눈의 문제가 아닌 신체 전체 기능의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시기능 검사는 왜 흔하지 않을까, 의료와 교육의 사각지대
놀랍게도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정기 건강검진 항목에 시기능 검사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매년 시력을 검사받지만 시기능 이상을 지적받거나 치료받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시기능 자체가 ‘질병’으로 명확하게 분류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료 시스템은 명확한 코드로 질병을 구분하고 보험 처리를 합니다.
하지만 시기능 문제는 명확한 진단 코드가 부족하고 증상도 ‘모호하다’는 이유로 진료실 밖으로 밀려납니다.
교육 현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이 책을 싫어하고 집중을 못 하면 ‘산만하다’거나 ‘학습 부진’으로 판단됩니다.
그러나 그 근본 원인이 시기능 저하일 수 있다는 가설은 아직 충분히 조명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시기능은 의료와 교육 사이, 어느 곳에서도 주목받지 못하는 회색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이 바로 제가 이 칼럼을 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시기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훈련을 통해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전문적인 평가를 통해 시기능의 문제를 진단하고 그에 맞는 훈련을 꾸준히 시행하면 눈은 점점 ‘편하게 보는 법’을 기억하게 됩니다.
저는 수많은 사례에서 이를 직접 보아왔습니다. 예를 들어 한 초등학생은 글을 읽을 때마다 줄을 건너뛰고, 받아쓰기에서 항상 5~6개 이상 틀렸습니다. 교사는 ‘주의력 부족’이라 판단했고, 부모는 ADHD를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시기능 평가 결과, 이 아이는 양안 협응과 초점 유지력이 심하게 떨어져 있었습니다.
3개월간의 시기능 훈련을 통해 글을 읽는 속도가 빨라졌고 받아쓰기 실수가 눈에 띄게 줄었으며 성격도 훨씬 밝아졌습니다. 훈련을 통해 ‘읽기’가 고통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이 되자 자신감이 붙은 것입니다.
시기능 관리는 단지 눈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의 삶을 바꾸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눈이 편해지면 뇌가 편해지고, 집중력이 살아나며, 감정 조절도 쉬워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삶의 질이 올라갑니다.
지금 당신의 눈은 진짜 '제 기능'을 하고 있나요?
시력이 1.5인데도 눈이 흐릿하다면, 안경을 써도 초점이 자주 흐려진다면 오래 책을 읽지 못하거나 자주 두통이 온다면 그건 단순한 눈 피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시기능 이상일 가능성을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저는 (사)한국시기능훈련교육협회의 회원으로서 그리고 다양한 현장에서 시기능 훈련을 통해 삶의 변화를 지켜본 사람으로서 말씀드립니다. 이제는 ‘시력’만이 아니라 ‘시기능’이라는 더 넓고 정밀한 시선으로 눈을 바라봐야 할 때입니다.
시력이 아닌 ‘보는 방식’을 점검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눈에 대한 새로운 질문이, 삶의 방향을 바꾸는 답이 되어줄지도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