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면 불안한 게 정상입니다” – 자율성이라는 자유가 주는 심리적 역설

퇴사 후 마주하는 첫 감정: 해방이 아닌 불안

자율성은 왜 심리적 부담을 유발하는가?

불안을 통제하는 힘, 자율성에 숨겨진 진실

 

1. 퇴사 후 마주하는 첫 감정: 해방이 아닌 불안

"이제 진짜 내 인생을 살아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퇴사 직후 그렇게 다짐한다. 회사를 그만두는 순간, 한동안은 해방감을 느낀다. 더는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출근길의 교통 체증에 시달릴 일도 없다. 오전 10시에 일어나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계획을 세우는 하루는, 누군가에겐 꿈꾸던 삶이다.

하지만 그 자유가 오래가지 않는다. 몇 주가 지나면 해방감은 조용히 사라지고, 그 자리에 ‘막연한 불안’이 밀려온다. "이대로 괜찮을까?" "시간을 낭비하는 건 아닐까?"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질문은 끝이 없고, 답은 나오지 않는다. 이 불안은 단지 돈 때문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심리 구조에서 비롯된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자율성의 역설’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선택의 자유를 갈망하지만, 그 자유가 전적으로 나에게 주어졌을 때, 예상치 못한 두려움에 빠진다. 직장에서의 고단함이 사라진 자리에 ‘모든 선택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가 들어선다. 퇴사는 해방이 아닌, 자기결정의 책임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첫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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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율성은 왜 심리적 부담을 유발하는가?

자율성은 인간의 핵심 욕구 중 하나다. 데시(Deci)와 라이언(Ryan)이 제시한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에 따르면, 자율성은 인간이 심리적으로 건강하게 기능하기 위한 세 가지 필수 요소 중 하나다. (나머지는 유능감과 관계성)

그렇다면 왜 자율성이 ‘스트레스’가 될까? 핵심은 ‘준비되지 않은 자율성’이다. 오랫동안 조직에 속해 타인의 평가와 일정에 맞춰 살던 사람은 갑작스럽게 주어진 전적인 자유에 적응하지 못한다. 매일 업무와 회의로 촘촘히 구성된 시간표는 사라지고, 갑자기 24시간이 전적으로 나의 판단에 달려 있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 어디까지 쉬어도 되는지,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이때 자율성은 선택이 아닌, 부담의 다른 이름이 된다. 사람들은 자기 삶을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고 느낄 때 행복해지지만, 통제할 수 없는 선택지 앞에서는 무력감을 느낀다. 퇴사 직후의 공백기는 그 무력감을 체감하게 하는 시기다.

또한 자율성은 항상 ‘불확실성’과 함께 움직인다. 기존 조직은 불만이 많아도 안전망이 있다. 월급은 들어오고, 일이 없어도 상사가 방향을 잡아준다. 그러나 자율적인 삶은 그 모든 결정과 결과를 개인에게 전가한다. 그 순간, 자율성은 ‘자기 통제’가 아니라 ‘자기 책임’으로 바뀐다.

 

3.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선택의 무게’

미국의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Barry Schwartz)는 『선택의 패러독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선택이 많아질수록 만족은 줄어든다. 왜냐하면 선택에는 반드시 후회가 따라오기 때문이다."

퇴사는 곧 선택의 연속이다. 오늘 무엇을 할지, 어떤 일을 찾을지, 얼마를 벌어야 하는지, 다시 조직으로 들어가야 할지... 삶은 계획이 아닌 판단의 연속이 된다. 문제는 그 판단의 결과를 누구 탓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연구에 따르면, 선택이 많을수록 우울감과 스트레스는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삶의 큰 전환기(퇴사, 이직, 창업 등)에는 사람의 뇌가 불확실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부정적 예측 편향(negative prediction bias)’을 강화시킨다. 이는 미래를 더 비관적으로 해석하게 만들어, 작은 실패나 공백도 과도한 불안을 유발하게 만든다.

자율성이 불안을 줄이는 도구가 되려면, 자기 효능감과 연계되어야 한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도 해낼 수 있다’는 감각은 자율성의 가장 강력한 기반이다. 하지만 자기 효능감이 낮은 상태에서 맞이하는 자율성은 사람을 심리적으로 무력하게 만든다. 퇴사 후의 불안은 단지 외로움이나 돈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효능감의 부재에서 비롯된 심리적 현상인 셈이다.

 

4. 불안을 통제하는 힘, 자율성에 숨겨진 진실

퇴사 후 찾아오는 불안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해답은 ‘자율성’ 그 자체에 있다. 자율성이 불안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제대로 구축된 자율성은 불안을 줄이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첫째, 자율성의 리듬을 만들어야 한다. 일과 시간의 구조가 없어진 상태에서는 자율성을 연습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정한 기상시간, 루틴, 자기계발 계획, 운동이나 명상 등을 통해 ‘내가 내 삶을 이끌고 있다’는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둘째, 작은 선택에서 성공 경험을 쌓아야 한다. 퇴사 후에는 큰 결정(창업, 유학, 이직 등)보다 작고 단기적인 목표를 먼저 세우는 것이 좋다. 책 한 권 완독, 블로그 연재 시작, 1주일간의 공부 목표 달성 등은 자율성에 긍정적인 자기 피드백을 형성하는 데 효과적이다.

셋째, 불안은 자연스럽다고 인정해야 한다. 퇴사 후 불안은 이상한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당신의 인생에 ‘선택권’이 생겼다는 증거이며, 자유에 대한 대가다. 문제는 그 감정을 부정하거나 숨기려 할 때다. 불안을 억누르기보다, 그 안에서 작게라도 움직여야 한다.

넷째, 자율성은 타인의 조언과 연결될 때 더 강해진다. 자율적이라는 말이 ‘혼자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자율성은 건강한 피드백 구조와 연결될 때 강화된다. 심리상담, 커뮤니티, 멘토링 등을 통해 내 선택의 방향을 점검하고 조율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론: 자율성은 연습되어야 한다

퇴사는 끝이 아니다. 오히려 진짜 나로 살아가기 위한 시작이다. 하지만 시작은 언제나 두렵다. 그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자율성을 연습해야 한다. 자율성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퇴사 후 찾아오는 불안은 ‘이 길이 맞나?’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하지만 그 질문은 틀린 것이 아니다. 그 질문을 반복하며, 우리는 자기 삶의 방향을 조금씩 조정해간다. 그 과정에서 자율성은 점점 단단해진다.

이제 중요한 건 두려움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불안을 발판 삼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자율성은 무서운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더 진정한 자신과 만날 기회가 담겨 있다.

 

작성 2025.08.29 06:25 수정 2025.08.29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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