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니까 당연히 할 수 있지.”
그 말은 격려처럼 들리지만, 때때로 나를 짓누른다. 누구도 엄마 수업을 받고 태어나진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완벽한 엄마’라는 이름표를 먼저 붙이고 시작한다.

첫 아이를 안았을 때, 나 자신에게 다짐했다. ‘이 아이에게 만큼은 부족함이 없어야 해.’ 매뉴얼대로 수유하고, 친환경 이유식을 만들며, 육아서를 밤새 읽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이가 웃을 때보다 우는 시간이 많아졌고, 내 체력은 매일 바닥을 찍었다.
모성은 본능이라는 말이 억울했다. 왜 나는 자꾸 서툴고, 왜 아이는 울기만 할까. 그 순간들을 지나며 깨달았다. 엄마가 된다는 건 단지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내가 되는 여정이었다.
전문가들은 말한다. ‘엄마’는 하나의 정체성이 아니라 하나의 직업이라고. 아기를 돌보는 데 필요한 지식과 감정 노동, 체력과 인내심은 어떤 전문 직종보다 복합적이다. 그런데도 사회는 엄마가 실수하면 “왜 그걸 몰랐어?”라며 평가하고, 완벽함을 요구한다.
심리학자 김은영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완벽한 엄마란 존재하지 않아요. 아이는 당신이 잘 웃는 사람일 때 가장 안정감을 느껴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지난날 내 울음이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었다.
한 조사에 따르면, 20~40대 초보 엄마 중 73%가 **‘육아 중 자신에게 분노를 느낀 적 있다’**고 응답했다. 그중 대부분은 ‘내가 부족해서’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이 수치는 엄마라는 정체성 아래 얼마나 많은 여성이 자신을 몰아세우는지 보여준다.
그러나 이 경험이 바로 성장이다. 아이가 우는 순간, 엄마도 함께 배운다. 웃음을 가르치려 애쓰기보다 함께 울고, 함께 버티며, 함께 웃는 것. 완벽함은 사랑을 대체할 수 없다. 그리고 아이는 그 사랑을 가장 먼저 알아본다.
그날, 남편은 말했다.
“완벽한 엄마 말고, 행복한 엄마가 돼줘.”
지금 나는 하루에 몇 번씩 실수하고, 이유식은 가끔 배달로 대신한다. 그런데도 아이는 나를 보며 웃는다. 그 미소에 담긴 대답은 분명하다.
"괜찮아, 엄마. 나는 엄마가 좋아."
“당신의 오늘도 충분히 빛나고 있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아이와 함께 웃는 그 순간이 가장 큰 선물이에요
우리의 이야기, 다음 화도 함께 걸어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