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언 앞에서도 친절해야 할까? 나를 지키는 친절이란?

공공기관에 등장한 경고문

새로운 친절의 정의

▲ 지난해 시행된 민원처리법시행령 제4조 3호에 따라 게시된 출입제한 및 퇴거 조치 안내문 [사진=보통의가치 뉴스]

 

“폭언·폭행 등의 위법 행위 시 출입 제한 및 퇴거 조치될 수 있습니다.”

 

요즘 공공기관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안내 문구다. 퇴거 및 출입제한이 될 수 있다는 말에 처음 접했을 때는 다소 불편했지만, 이런 문구가 등장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떠올리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한때 ‘친절’을 서비스의 기본으로 내세우던 공공기관이 이제는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민원서비스가 확산되면서 ‘친절’은 공무원의 기본 덕목이 되었다. 각 지자체는 민원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매년 친절 교육을 실시했고, 전화 응대와 대면 서비스까지 세세한 매뉴얼을 만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매뉴얼을 충실히 따른다 해도 모든 민원인을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오히려 시대가 변하면서 민원의 유형이 다양해지고, 친절이 상처로 돌아오는 경우가 늘어났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 민원인이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고문은 단순한 안내가 아니라,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절박한 호소이자 공직자들의 안전망인 셈이다.

 

새로운 친절의 정의

 

불만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핵심 욕구를 파악하고, 경청하며 공감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대부분의 갈등은 조율될 수 있다. 그러나 대화로 풀리지 않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 일부는 화를 무기로 상대를 압박하고, 폭력으로 감정을 표출한다. 폭력은 확대 재생산되기 때문에 이럴 때는 해결 노력보다 강경한 대응 조치가 불가피하다.

 

분노가 일상화된 이 시대에 나의 감정을 잘 조절하는 능력은 민원인에게도 공직자에게도 꼭 필요하다. 그리고 친절의 정의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친절이란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낮추는 태도가 아니다. 자신을 지키면서도 상대와 균형을 맞추는 것, 그것이 진짜 친절이다. 구체적으로는 이렇다. 

 

‘예의는 지키되, 무례함은 거절하기’

‘경청하되, 폭언은 단호히 제지하기’

‘도움은 주되, 무리한 요구는 거절하기’

 

경계가 만드는 친절

 

친절이란 결국 건강한 경계 위에서 가능하다. 나를 존중하는 사람이 상대도 존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폭언 앞에서조차 친절해야 할 의무는 없다. “이런 폭언이 계속되면 도움을 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단호히 말하는 것, 그것 역시 친절의 또 다른 형태다. 경계 없는 친절은 누군가를 지치게 하지만, 올바른 경계 위의 친절은 서로를 살리는 힘이 된다. 친절하되 나를 지키고, 배려하되 스스로를 낮추지 않는 것. 이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친절이다. 그것은 나와 당신 모두를 지키는 최소한의 품격이다. 

 

 

✍ ‘보통의가치’ 뉴스는 작은 일상을 기록하며, 우리 사회가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치를 전하고 있습니다.
 

작성 2025.08.26 08:51 수정 2025.08.26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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