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관 속 고조선, 단군도 연표도 사라졌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최근 케이팝 데몬헌터스의 열풍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부터 취객선비 변색 잔까지, 감성 디자인과 전통 요소를 결합한 이 굿즈들은 MZ세대를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SNS 인증 문화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 같은 굿즈 열풍은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분명 긍정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정작 박물관의 본질적 기능인 역사 교육과 전시의 균형 측면에서는 커다란 물음표가 붙는다. 특히 고조선 전시의 축소 및 삭제 문제는 박물관의 전시 철학과 방향성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청동기 시대의 대표 유물인 비파형 동검을 전시하면서도 이를 고조선 역사와 연결짓지 않고, 단군의 건국 역사나 고조선의 지도, 연표 등 기본적인 역사 정보조차 누락한 전시 방식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이는 일종의 의도된 축소와 배제, 즉 역사적 해석을 특정 시각으로 편향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한류 박물관의 굿즈 흥행, 전시 철학은 뒷걸음질
국립중앙박물관은 세계적인 미술관과 견줄 만큼의 관람객을 유치하고 있다. 2024년에는 400만 명을 돌파했고, 외국인 관람객도 급증하는 추세다. 이는 전시 외에도 편의 시설, 카페, 굿즈 샵 등의 복합 문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화려한 외형과 흥행 속에 숨겨진 ‘고조선의 공백’은 쉽게 지나쳐선 안 될 박물관 운영의 맹점이다.
2025년 2월 재개관한 선사고대관에서 고조선 전시는 단군 조선이 사라지고, 위만조선 중심의 해석으로 대체된 상태다. 이전 전시에서 볼 수 있었던 고조선의 연표, 지도, 건국 신화에 대한 설명은 모두 삭제되었고, 고조선과 부여, 삼한을 하나의 공간에 몰아넣는 방식으로 전시 공간 자체가 축소됐다. 특히 고조선의 시초를 비파형 동검 문화로 연결짓는 학설은 무시된 채, 청동기 문화와 고조선이 인위적으로 분리된 점은 역사 교육적 측면에서도 심각한 누락이다.
만주 유물은 외면, 위만조선만 남은 ‘편향 전시’
가장 큰 문제는 고조선의 중심지인 만주 지역 유물의 철저한 배제다. 요녕성 일대에서 출토된 비파형 동검, 고인돌, 청동 단검 등 고조선의 실체를 뒷받침하는 유물들이 다수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현 전시는 한반도 내 유물만을 고조선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고조선을 한사군 평양설과 같은 식민사관적 시각에 가깝게 축소하는 전시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전시 해설판에는 위만조선을 고조선으로 지칭하는 듯한 해설이 달려 있고, 단군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이 같은 전시는 중국 사서의 기술, 예를 들면 사기나 한서의 위만조선 중심 서술에만 의존하고, 삼국유사, 제왕운기, 동국통감 등 한국 고대 사서의 기록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고조선은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 기록과 유물로 증명 가능한 실체임에도 불구하고, 박물관은 이를 외면하고 있다.
역사 교육의 마지막 보루, 과연 지금의 박물관이 맞나?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은 “고고학적 시대 구분에서는 고조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아 전시에서 제외했다”는 입장을 밝히며 논란을 일단락시킨 바 있다. 하지만 현재의 전시는 이마저도 무시하고 있다. 단순히 용어상의 문제로 치부하기 어려울 만큼 고조선 관련 전시 자체가 지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박물관은 단순히 유물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공적 기억을 구성하는 공간이다. 전시의 방향성과 철학은 국민이 어떤 역사 인식을 공유하게 될지를 좌우하는 기준점이다. 특히 외국인 관람객이 많아지는 시점에, ‘굿즈로는 감동을 주지만 전시로는 정체성을 잃은’ 박물관의 모습은 국가 역사 교육 기관으로서 치명적 결함이다.
고조선을 단순한 전설로 취급하거나, 위만조선 중심으로 왜곡하는 전시는 더 이상 시대 흐름에 부합하지 않는다. 고조선부터 제자리에 놓을 수 있는 용기 있는 전시 개편이야말로, 박물관이 문화상품 그 이상으로 거듭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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