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서해의 대표적인 해수욕장 대천해수욕장과 꽃지해수욕장을 다녀왔습니다. 두 곳에서의 대조적인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대천해수욕장에서는 안전요원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고, 안내경고방송이 끊임없이 흘러나왔습니다. 처음엔 ‘역시 안전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하면서 수궁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엔 사이렌과 호루라기등의 경고음 때문에 신경질이 날 정도였습니다.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의 통제였습니다.
반면, 꽂지해수욕장은 정반대였습니다. 안전 요원도 드물고 수영 가능 구역을 알리는 경계선조차 없습니다. 덕분에 누구의 방해도 없이 해수욕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가만히 있어도 수위가 올라오고 있음을 직감합니다. 자유로움속에서 은근한 불안감이 스며듭니다.
두 해수욕장의 경험은 제 내면의 모순을 보여줍니다. 통제와 간섭은 싫지만, 막상 위험이 닥치면 보호받고 싶은 마음을 발견합니다. 동시에 이런 모순을 조율하는 게 정치라고 여겨지더군요.
최근 성호 박물관을 다녀온 뒤 『성호사설』 해설서를 읽고 있는데, 한비자의 ‘은괄(檃栝)‘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은(檃)은 휘어있는 것을 곧게 하고 괄(栝)은 뒤틀려저 있는 것을 둥글게 한다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은괄’을 기다리는 대상이며, 정치란 인간을 다듬는 일입니다.
그러면서 『성호사설』 <인사문>에는 “선을 북돋는 데는 예보다 더한 것이 없고, 악을 막는 데는 법제와 형벌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고 덧붙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습니다. 선과 악, 옳고 그름이 어디 명확하게 구분이 되던가요. 이해와 이익은 또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요.
아마 정치는 완벽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게 아닌, 끊임없이 균형을 추구하는 과정이라고 여깁니다. 해수욕장의 안전 문제가 정치의 자그마한 축소판인 것처럼,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은 통제와 자유 사이의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계속해서 조율해야 합니다.
정치가 사회의 균형을 다듬듯, 우리도 각자의 삶에서 스스로의 정치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삶의 유능한 정치인이 되는 일, 쉽진 않겠지만 결국 우리가 계속해서 걸어가야 할 길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