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칼럼] 1화 잘하고 있다는 말의 수치화

보통의가치 칼럼, '일상에서 배우다'

김기천 칼럼니스트 [사진=보통의가치] 

 

술자리에서 만난 애매한 격려

얼마 전, 지인들과 오랜만에 술자리를 가졌다. 허심탄회하게 웃고 떠들던 그 밤, 대화는 어느새 진지한 분위기로 흘러갔다. 한참을 듣고 있던 후배에게 이렇게 말했다. 

"OO이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 예전에는 다소 수동적인 모습이 있었는데, 요즘은 스스로 방향을 잡고 움직이더라. 그것은 큰 변화이고 대단한 발전이야."

 

그러자 후배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잘하고 있다는 말은 듣기 좋지만, 솔직히 말하면 애매해요. 얼마나 잘하고 있는 건지, 어떤 점을 잘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있으면 더 힘이 될 것 같아요."

 

진심이 전해지지 않는 순간, 그 순간 말문이 막혔다. 나로서는 진심을 담아 건넨 격려였지만, 상대에게는 막연한 위로로만 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잘하고 있다'는 말이 따뜻하긴 하지만, 구체성이 결여되면 마음에 오래 남지 못한다는 점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돌아보면, 나 역시 누군가를 격려할 때 "잘하고 있어", "충분히 괜찮아"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해왔다. 진심은 분명했지만, 그 말 속에 기준과 맥락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상대가 얼마나 노력했고, 어떤 변화가 있었으며, 어디에서 성장을 보여주었는지를 짚어주었다면 훨씬 더 깊이 있는 격려가 되었을 것이다.

 

관찰에서 나오는 구체적 격려의 힘

예컨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하루 30분씩 영어 공부를 이어가는 꾸준함이 정말 대단하다."

"이번 달에 세 번이나 먼저 팀장과 대화를 시도한 것은 큰 변화다."

"발표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낸 모습이 가장 자랑스럽다."

 

이처럼 '잘하고 있다'는 말에도 근거와 맥락을 담아주면,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구체적인 성장의 확인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 자신을 더 깊이 인정하고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결국 '잘하고 있다'는 말이 힘을 가지려면, 감탄이나 위로가 아니라 관찰과 공감에서 비롯된 구체성이 필요하다. 상대방의 작은 변화를 세심하게 지켜보고, 그 노력을 정확히 짚어주는 것. 이런 배려가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보통 마음이 되면 어떨까. 직장에서, 가정에서, 친구 사이에서 서로의 성장을 구체적으로 인정해주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 된다면, 우리는 더 따뜻하고 든든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건네는 응원

오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너는 지금, 예전과 다르게 행동하고 있다.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보고 있다.” 그 말이 누군가의 긴 밤을 버티게 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갈 용기가 되기를 바라며, 세심한 관찰과 구체적인 격려가 우리 사회의 보통이 되는 그날을 꿈꾼다.

작성 2025.08.20 20:35 수정 2025.08.23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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