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가랴 12장, 울음으로 쓰여진 구속의 서사
눈물로 시작된 예언, 구원의 시초를 말하다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리니..."
스가랴 12장 10절은 예언서 전체 중에서도 가장 날카롭고도 부드러운 칼날처럼, 인간의 마음을 꿰뚫는다. 이 구절은 단순한 슬픔의 묘사가 아니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보여주는 영적인 출발점이다.
우리는 구원이라 하면 흔히 기적, 승리, 영광 같은 단어를 떠올린다. 그러나 스가랴의 예언은 정반대다. 예루살렘은 열방에 의해 포위되고, 이스라엘은 약해 보이며, 그 누구도 구원의 기미를 감지하지 못하는 가운데, 오히려 ‘눈물’이 터진다. 바로 그 순간이 하나님의 구원의 시작이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전쟁의 승리가 아닌, 찔림 당한 이를 바라보며 흘리는 ‘애통의 눈물’을 통해 회복의 문을 여신다. 이것은 인간의 논리를 뛰어넘는 신의 방식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외적인 역전이나 힘의 과시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눈물, 곧 죄를 인식하고 하나님께 향하는 영혼의 방향 전환에서 비롯된다.
스가랴의 이 장면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고통 속에서, 실패의 끝에서, 좌절의 끝자락에서 터지는 눈물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시기 시작하는 조용한 신호다.
전쟁이 아닌 애통으로 이끄는 하나님의 방식
스가랴 12장은 종말론적 긴장감으로 시작된다. 열방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침략하며, 도시는 술잔과 무거운 돌처럼 모든 민족의 시험대가 된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전쟁은 필패로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은 놀라운 반전을 준비하신다.
예루살렘은 단순히 방어의 대상이 아니라, 구원의 서막이 터지는 장소다. 하나님은 도시를 무력으로 지키지 않으신다. 대신, "은총과 간구의 영"을 그 백성 위에 부으신다. 그리고 백성은 찔린 자, 메시야를 바라보며 무너진다. 눈물, 곧 회개의 울음이 도시 전역을 덮는다.
이 장면은 하나님의 방식이 얼마나 인간과 다른지를 보여준다. 세상의 지도자들이 택하는 방식은 군사력, 외교, 동맹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애통이라는 내면의 반응을 통해 세계사의 방향을 틀어버리신다. 구속사는 전쟁터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펼쳐진다.
이 애통은 개인의 후회나 감정적 발산이 아니다. 이는 죄를 인식하고, 자기 민족의 역사를 꿰뚫는 영적 각성이다. 하나님의 방식은 언제나 그랬다. 애굽에서의 출애굽도, 바벨론 포로에서의 귀환도, 오순절의 성령 강림도 모두 눈물과 기다림, 간구로부터 시작됐다. 애통은 단지 울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거리를 줄이는 가장 확실한 통로다.
찔림 당한 자 앞에서 무너지는 심령
스가랴 12장의 정점은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애통할 것이라"는 10절이다. 이 구절은 복음서의 메시야 예언으로도 인용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도 긴밀하게 연결된다. 찔림 당한 이는 단지 역사 속 인물이 아니다. 이는 죄 없는 자의 희생이며, 인간의 죄악이 만들어낸 결과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자신들이 찔러 죽인 자를 바라보며 울기 시작한다. 이는 충격이자 깨달음이다. ‘우리가 그를 죽였다’는 인식은 단순한 자책이 아니라, 정체성과 역사, 죄와 진리를 직면하게 한다. 이 애통은 민족 전체의 회개이고, 집단적 각성이다.
이 애통의 정서는 단지 이스라엘만의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요청된다. 성경은 말한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 이는 감정의 복이 아니라 영적 통찰의 결과다.
오늘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 앞에 울고 있는가? 찔림 당한 메시야 앞에서 얼마나 무너져본 적이 있는가? 복음은 죄의 찔림을 느끼지 못하는 심령에게는 아무 일도 일으키지 않는다. 애통함 없이 부흥은 없다. 회개 없이 회복은 시작되지 않는다.
울음 속에 피어나는 은총과 회복의 영
스가랴 12장의 마무리는 절망이 아니다. 도리어 소망이다. 애통이 끝난 자리에 하나님은 ‘은총과 간구의 영’을 부어주신다. 회개의 눈물은 결코 허투루 흘러가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 눈물을 받아 새 일을 시작하신다.
예루살렘은 열방의 공격 앞에서 무너질 듯하지만, 그 중심에서는 부흥이 시작된다. 그 이유는 무릎 꿇는 심령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애통하는 자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새로운 방향성을 얻는다. 이 방향성은 전쟁을 이기는 전략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삶이다.
이 회복은 공동체적이다. 스가랴는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의 거민 위에" 은혜가 임한다고 말한다. 이는 각 가정, 각 계층, 각 도시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동일하게 일하신다는 뜻이다. 눈물은 민족적, 공동체적 부흥을 일으키는 불쏘시개가 된다.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방식은 같다. 애통을 통과한 자만이 은총을 입는다. 무너진 심령 위에 하나님의 영이 머문다. 예배는 화려한 음악이 아니라, 깨어진 마음 위에 흐르는 하나님의 임재로 완성된다. 회복은 애통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은 지금도 울음을 찾으신다
스가랴 12장은 단지 종말의 예언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을 사는 신앙인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러브레터다. 하나님은 여전히 인간의 눈물 속에서 일하신다.
교회는 지금 울고 있는가? 성도는 찔림 당한 메시야 앞에 무너지고 있는가? 우리는 오히려 눈물 대신, 기계적인 신앙, 관습적인 예배, 전략 중심의 사역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
회복의 시작은 애통이다. 무너짐 없이 재건은 없다. 눈물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영적 출발의 신호다. 하나님은 지금도 누군가의 울음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신다.
당신의 삶이 무너졌다면, 울어도 좋다. 오히려 울어야 한다. 그 눈물이야말로 하나님의 역사가 스며들 공간이다. 지금 울어야 한다. 찔림 당한 메시야 앞에서, 그분을 바라보며 무너져야 한다. 그 자리에 은총이 흐르고, 회복이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