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형 목사(David Jang)는 에베소서 6장 12절을 오늘의 언어로 풀어 우리 앞의 싸움이 사람과 사건을 넘어 그 배후에서 현실을 비틀고 의미를 흐리는 세력과의
씨름임을 또렷하게 보여 준다. 성경이 말하는 ‘정사’(ἀρχαί, archai)와 ‘권세’(ἐξουσίαι,
exousiai)는 오래된 신화가 아니라 지금도 작동하는 체계적 악의 질서이며,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 마음과 문화와 제도 속에 작은 왜곡을 심고 그것이 일상과 구조를 통해 증폭되도록 만든다고 그는 설명한다(엡 6:12). 그래서 장재형 목사는 누군가를 적으로 삼아 감정적으로
공격하기보다, 사람을 넘어선 배후의 거짓과 허위를 먼저 식별하는 성경적 분별을 배우자고 권한다. 이 싸움은 공포의 서사가 아니라 이미 이기신 그리스도의 승리를 현재로 번역해 가는 믿음의 실천이며, 그 열쇠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실제 삶에서 착용하는 데 있다고 그는 말한다(골 2:15; 고후 10:3-5).
그의 진단은 추상적이지 않다. 개인의 차원에서는 우울과 중독, 분노와 냉소, 파괴적 비교와 자기비하 같은 패턴이 통제되지 않고 커질 때 배후에서 ‘왜곡된
해석’을 밀어 넣는 거짓의 목소리가 작동할 수 있음을 읽어 내라고 권면한다. 사회적 차원에서는 권력의 사유화와 부패의 정상화, 선악의 뒤바뀜, 여론 조작과 분열의 장치들이 제도와 이념의 옷을 입고 굳어질 때 정사와 권세의 전술이 현실을 잠식한다고 경고한다. 교회 안에서는 복음의 중심을 흐리는 사소한 논쟁의 과장, 뒷말과
비난의 유통, 겉으로만 경건해 보이려는 위선이 공동체의 신뢰를 갉아먹는 통로가 되기 쉽다. 그러나 장재형 목사는 방향을 늘 승리 쪽으로 돌린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장해제하셨다는 복음의 사실이 영적 전쟁의 출발점이자 중심이기 때문이다(골 2:15; 롬 8:37). 그리스도인은 패배의 두려움에서 싸우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이기신 분과 함께 그 승리를 현재로 ‘번역’해 나가는 사람들이다.
승리를 현재로 데려오는 가장 실질적인
길로 장재형 목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제시한다. 진리의 띠는 기준을 허리에 졸라매듯 붙드는 습관이다. 하루가 시작될
때 말씀을 통해 사실을 사실대로 보려는 태도가 자리 잡으면 작은 거짓이 큰 결론을 비틀지 못한다. 의의
흉배는 마음과 양심을 지킨다. 의는 성취가 아니라 보혈로 받은 신분이라는 확신이 정죄와 수치, 무가치감의 파도 앞에서 치명상을 막아 준다.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신은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전진을 가능하게 한다. 분주함과 소음 속에서도 복음이 주는 평안으로 발을 디디면
뒤로 미끄러지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믿음의 방패는 의심과 분노, 정욕과 탐욕, 비교와 불안 같은 불화살을 공중에서 꺼뜨린다. 이 방패는 혼자 들 때보다 함께 들 때 더 넓어지고 두터워진다. 공동체가
서로의 믿음을 지켜 줄 때 개별 공격은 방패벽 앞에서 약해진다. 구원의 투구는 생각의 관문을 지킨다. 성과와 평판이 나의 가치를 결정하지 못한다는 구원의 확신이 자리 잡으면 많은 유혹이 머리에서 걸러진다. 마지막으로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은 유일한 공격 무기다. 검은
도구가 아니라 훈련이다. 묵상과 암송, 실제 상황에서의 선포를
통해 말씀이 입과 마음에 익숙해질수록 거짓의 문장은 설득력을 잃는다(엡 6:13-17).
장재형 목사는 이 전신갑주가 교리로만 머물면 아무 효력이 없다고 강조한다. 갑주는 ‘입어야’ 한다. 그래서 그는 기도를 전신갑주가 현실에서 힘을 갖게 하는 연결고리로 설명한다. 기도는 청원 이전에 방향을 세우는 행위다. 새벽마다 하나님을 기억하는 사람은 하루의 문턱에서 이미 거짓의 그림자를 식별할 힘을 얻는다. 금식과 회개, 감사와 찬양, 중보와 선포는 서로 다른 전장에 필요한 서로 다른 무기다. 깊은 습관의 문제에는 금식과 공동체적 책임이, 불안과 공포에는 찬양과 감사가, 거짓과 혼란에는 말씀 선포가 결정적이라 그는 말한다. 동시에 영적 전쟁을 이유로 전문적 도움을 배제하지 말라고도 권한다. 필요한 의학적 치료와 상담을 병행하면서 말씀과 기도로 생각의 관문을 지키는 이 이중 전략이 장기적으로 가장 안전하고 효과적이며, ‘깨어 있음’의 실제 모습이라고 설명한다(벧전 5:8-9).
교회 공동체는 이 싸움의 최전선이자 피난처다. 장재형 목사는 교회를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함께 방패를 드는 군대로 묘사한다.
주일의 예배에서 우리는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고, 성찬에서 용서받은 백성의 자리를 되새긴다. 주중에는 소그룹과 중보기도가 서로의 약점을 덮어 주고, 섬김과 나눔이
사랑의 체력을 길러 준다. 쓰러질 때는 속히 일어나는 법을 배우고, 넘어졌을
때는 솔직히 고백하는 용기를 훈련한다. 고립은 사탄의 중요한 전략이기 때문에, 공동체의 연합과 화해는 곧 영적 전쟁의 승리다. 숨기지 말고 빛
가운데 드러낼 때 치유가 시작되고, 드러나는 순간부터 고통은 설명을 얻고 의미를 찾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교회는 수세적인 방어선이 아니라 복음을 전진시키는 거점이 된다.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한다”는 약속은 폭력적 공격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진리와 사랑으로 먼저 움직이는 담대함, 다시
말해 약자를 돌보고, 부정의에 맞서고, 문화와 학문, 기술의 현장에서 창조 질서를 드러내는 창의적 주도권을 뜻한다(마 16:18). 장재형 목사는 캠퍼스와 미디어, 예술과 기업, 정책과 시민사회로 흩어지는 성도들이 각자의 전문성을 따라 그 자리에서 빛과 소금으로 서라고 격려한다. 회의실에서 윤리적 결정을 밀어붙이고, 연구실에서 투명한 데이터를
제시하며, 제작 현장에서 사람을 존중하는 콘텐츠를 만들고, 시장에서
정직한 거래를 지속하는 것 자체가 영적 전쟁의 전략적 승리다. 작은 승리의 축적이 도시의 공기를 바꾸고, 도시는 결국 나라의 방향을 새롭게 한다.
말씀 선포는 전선의 중심에 있다. 거짓의 영은 언어를 오염시켜 의미를 흐리고, 단어의 정의를 바꾸어
선악을 뒤바꾼다. 그러므로 설교자와 교사는 텍스트에 정확하고 복음에 명료하며 성령의 권능을 신뢰해야
한다. 장재형 목사는 에베소서 6장의 문장을 삶의 언어로
번역해 준다. 가족 갈등으로 지친 집에서는 진리의 띠가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용기가 되고, 의의 흉배는 서로를 정죄하지 않고 복음의 시선으로 보는 태도가 되며, 평안의
복음의 신은 대화의 문을 다시 여는 실천이 된다. 직장에서의 압박과 비교 앞에서는 믿음의 방패가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는 결단이 되고, 구원의 투구는 성과가 정체성의 근거가 아니라는 지성적 고백이 되며, 성령의 검은 탐욕과 두려움의 논리에 맞서는 말씀의 문장으로 작동한다. 이런
식으로 전신갑주는 현실의 장면마다 구체적 적용점을 갖게 된다. 일상에서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배우기
위해 그는 반복 훈련을 강조한다. 필사와 암송, 통독과 강해, 소그룹 나눔과 중보기도, 섬김과 나눔의 선순환을 통해 신앙을 ‘기술’로 갖추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침에는 시편으로 마음을 단정하고, 점심에는 잠언 한 구절로 선택을
정렬하며, 저녁에는 복음서의 장면으로 사랑을 회복하는 루틴이 곧 전술이다. 주중의 작은 순종—누군가를 축복하고 복음을 전하며 약자를 돕는 행동—이 전선을 한 걸음씩 전진시킨다. 실패했을 때는 회개가 재정렬임을
배우고, 용서는 관계를 다시 세우는 창조적 사건임을 배우라. 하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신다(사
42:3). 낙심이 오래 머물 자리도, 부끄러움이 정체성을 규정할 권리도 없다.
장재형 목사가 말하는 영적 전쟁은 결국
소망의 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영적 전쟁을 과장하면 사람들은 음모론과 공포에 갇히고, 이를 무시하면 악은 조용히 정당성을 얻는다. 균형은 복음의 중심에서
온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는 과거의 사건이면서 현재의 능력이고, 미래의
완성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현실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며, 동시에 하늘의 권세에 참여한 존재답게 기도와 예배로 세상을 축복한다. 가정에서의
화해, 일터에서의 정직, 도시에서의 공의, 교회에서의 연합이 그 축복의 구체적 모습이다. 한국교회와 세계교회가
서로의 강점을 나눌 때 전선은 견고해진다. 기도하는 공동체는 선교의 발걸음과 만나야 하고, 텍스트를 해석하는 지성은 현장의 눈물과 이어져야 하며, 구조를 세우는
리더십은 성령의 바람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바울이 로마의 길과 언어를 복음의 통로로 삼았듯, 오늘의 교회는 디지털 네트워크와 글로벌 이동성을 복음의 인프라로 사용해야 한다. 번역과 교육, 연구와 미디어, 사회적
기업과 자선, 정책 제안과 시민 참여가 서로 연결될 때 정사와 권세가 세운 요새는 무너진다. 이 모든 사역의 동력은 억지가 아니라 기쁨이다. 사랑에 사로잡혀
춤추듯 전진하는 기쁨, 그것이 세상을 이기는 힘이다.
결론은 단순하다. 승리는 이미 주어졌다. 이제 우리는 진리의 띠로 기준을 붙들고, 의의 흉배로 마음을 지키며, 평안의 복음으로 전진하고, 믿음의 방패와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으로 거짓을 끊어 내면 된다(엡 6:13-17). 장재형 목사가 강조하듯 교회는 수세가 아니라
전진하는 공동체이며, 그 전선은 오늘 우리의 자리다. 방에서, 책상 위에서, 이동 중인 지하철과 버스에서, 회의실과 강의실과 작업 현장에서, 우리가 쓰는 메시지와 이메일과
보고서 속에서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빛나도록 하자. 그 빛이 어둠을 물러가게 하고, 그 평안이 흔들리는 마음을 붙들며, 그 사랑이 상처 난 관계를 치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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