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걸작을 판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요소는 어떻게 하면 잘 숨길 수 있느냐다. 뛰어난 영화는 굳이 영화 내에서 배우가 말을 하지 않아도, 혹은 감독이 보여주지 않아도 관객이 찰떡같이 알아듣고 해석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거나 상상하게 만든다. 그런 영화들은 한 번의 감상으로 끝나지 않고 반복 감상으로 이어지게 한다.
<여고괴담>의 민규동 감독이 오랜만에 만든 이 작품은 베를린 영화제를 비롯한 유수의 영화제에 초대된 화제작으로, 많은 영화 팬들의 기대를 받은 작품이다. 은퇴를 앞둔 60대 할머니 킬러에게 복수하는 젊은 킬러의 이야기는 꽤 흥미를 끄는 소재다. 거기에 구병모라는 걸출한 소설가의 원작이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영화를 본 후, 이 영화는 최근 한국 영화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파과>는 말해야 하는 부분은 감추고, 정작 말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은 말해서 보는 사람을 허탈하게 만든다. 이혜영은 몸을 아끼지 않는 액션으로 전설적 킬러의 고독을 표현하고, 김성철은 냉소적인 연기로 극에 균열을 낸다. 그러나 문제는 연출이다. 잘라내야 할 곁가지를 붙들고, 정작 집중해야 할 줄기는 희미해진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 그릇에 모으려고 한다.
킬러가 된 손톱이 조각이 되는 이야기는 한 축으로, 이것만 해도 장편영화 분량이 나올 정도다. 손실장이 신성방역을 맡게 되는 이야기는 또 어떤가. 다리를 절고 있는 그와 조각의 이야기도 꽤 긴 이야기가 될 듯하다. 하지만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부분은 투우가 신성방역에 잠입하여 조각에게 복수하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킬러 조직에 잠입한 새로운 킬러가 전설적인 킬러 조각을 없애기 위한 밑작업은 무엇인가? 그가 평생 동안 계획한 복수는 긴밀하고 촘촘하며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해야 한다. 왜냐하면 복수의 대상이 킬러계의 전설적인 대모인 조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거대한 복수 대상에 대한 투우의 계획은 신성방역에 잠입하고 조각의 근처에서 배회하며 기다리는 것뿐이다. 조각이 실수를 하거나 규칙을 어기는 것을 기다리는 것!
절정부인 해피랜드에서 총격 신은 신성방역 전원의 킬러들과 조각의 대결이다. 왜 이들이 투우의 복수극에 동원되었을까? 조각의 잘못은 목격자를 처단하지 않은 부분밖에 없다. 고작 이 단순한 사실이 이 거대 조직을 동원하게 되는 원동력이었으며, 이 부분 역시 투우가 의도한 것이 아니다. 만약 평생 동안 규칙을 지키며 직업에 충실했던 조각이 수의사인 강봉회를 제거했더라면, 그래서 그의 딸인 해니를 납치할 명분이 없어졌다면 투우의 복수는 시도조차 못 했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복수의 원인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을 거두지 않은 것에 대한 원한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관객으로서 진이 다 빠지게 된다. 어릴 때 가정부였던 조각을 엄마처럼 생각했고, 자신을 학대하던 아버지를 죽인 사람을 동경했지만 자신을 내버려둔 것에 대한 원망이라면, 그건 조각의 잘못이 아니라 애증의 대상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된 집착일 뿐이다. 그래서 죽어가는 투우에게 “왜 진작 말하지 않았냐”라고 묻자 “기억하지 못하면 슬프다”고 대답하는 장면은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한국 영화는 복수극에 있어서 유구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박찬욱의 3부작이 있고, 이정범의 <아저씨>, 김지운의 걸작 <달콤한 인생>, 장철수의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 등 셀 수도 없는 작품들이 복수라는 소재를 다루며 좋은 성취를 보여줬다. <파과>는 주인공이 복수의 대상이 되는 이야기이지만 좀 더 치밀하고 견고했어야 했으며, 곁가지들은 과감히 쳐냈어야 한다. 뛰어난 원작을 어떻게 각색하고 연출해야 또 다른 걸작으로 탄생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교훈을 전하는 아쉬운 작품이다.
**K People Focus 모하지 칼럼니스트** (mossisle@gmail.com)
영화와 음악을 사랑하며 아이들에게 독서와 글쓰기를 가르치는 희망의 칼럼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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