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용 (수필가/철학자)
“나의 아흔아홉 마리 호랑이 그림이 국회의사당에 전시되고 있다.”
고모부는 이런 말로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자신의 그림이 국회에서 전시되고 있는 것에 대해 긍지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실로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축하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을 이제는, 가족들 중 어느 누구도 소장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안타까웠습니다. 지금은 그 그림을 찾을 수도 없습니다. 그 그림이 그곳에 영원히 전시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인지, 그런 질문조차도 이제는 의미가 없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때는 역사적 사건처럼 여겨지던 그 일도 이제는 세월이 흘러 거의 잊히고 말았습니다.
사십 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아무도 묻지 않습니다. 고모부의 그림을 찾을 수나 있을까, 물론 찾는다 해도 문제입니다. 그 큰 그림을 보관할 공간이 없어서 문제가 될 것입니다.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 것들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었다.”
오늘은 읽다 중단했던 소설, 한강의 《검은 사슴》을 다시 꺼내 읽고 있습니다. 내가 갖고 있는 한강 작가의 책들 중에 가장 두꺼운 책입니다. 그 책 중에, 오늘 아침에는 이 구절들이 읽혔습니다.
지금, 있음의 형식으로 존재하는 것도 결국에는 사라질 것입니다.
물론 사라질 것들 중에 남겨질 것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들 중에 아마도 작가 한강의 글은 영원히 남겨질 것 같습니다.
지금 당장은 무시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결국에는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듯이 메마른 모래들이 걷히고 나면 남겨지는 단단한 바위가 모습을 드러내고 말 것입니다. 그런 하얀 인수봉과 같은 현상으로 나는 한강을 들여다봅니다.
지금 당장은 ‘노벨문학상이 뭐 대단한 것이라고!’ 하며 하찮게 말하는 이들의 발언이 공기를 채우고 있지만, 소리를 채운 그 입 냄새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꽃 향기로 바뀔 것입니다.
물론 한강의 글이 정점은 아닐 것입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그녀의 글을 뛰어넘는 또 다른 글이 탄생할 것입니다. 그때까지 그녀의 글은 훌륭한 훈련장이 되어줄 것입니다.
그녀의 말들에서 한계를 찾아낸 정신이 천재가 되어 새로운 지평을 보여줄 것입니다. 그런 정신의 출현과 그런 빛과 같은 글의 탄생을 확신합니다.
우리는 해낼 것입니다. 그때까지 고행을 해야 합니다. 연꽃을 피울 줄기 속에 고된 시간의 세월을 담아야 합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하나뿐인 눈을 잃은 괴물이 이런 말로 친구들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나를 죽이려 한다.”
의역하면, “아무도 나를 죽이려 하지 않는다”가 됩니다.
오디세우스가 괴물에게 들려준 자기 이름이 ‘오우티스’, 즉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습니다. 그 단어를 주어로 하면, 우리말이 이상하고 어색하게 들릴 뿐입니다.
오디세우스는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괴물의 추적을 따돌릴 수 있었습니다. 오디세우스는 영리한 지략가였습니다. 트로이의 목마도 그의 작품이었습니다. 그의 전략과 전술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사람의 눈과 귀를 속이는 거짓말도 영웅의 이야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성공한 거짓말’이 그를 영웅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의 영웅적 행위는 세월의 검증에서 살아남는 고전 속에 담기게 되었습니다. 신화 속에, 신들의 이야기 속에서 불멸이 된 것입니다.
위대한 사람이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말하며 타인의 눈을 속일 수 있다면, 그래서 정말 그를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인정하고 판단하도록 설득을 해 낸 사람이 있다면, 그는 오디세우스처럼 죽음의 위기 속에서도 달아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그런 말로 타인을 속이지 못한다면 문제는 커집니다. 경계심만 일깨울 뿐입니다. 남을 속일 수 없다면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반전을 위한 거짓말은 지혜가 없으면 못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