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 삼십에 팔린 목자 — 배신과 심판의 스가랴 11장, 그 오늘의 의미
하나님이 보여준 회복의 비전과 배반당한 은총의 언약
예언자 스가랴는 포로 귀환 이후 무너진 유다와 이스라엘의 현실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 무너진 성전, 무너진 믿음, 무너진 백성의 마음. 그러나 하나님은 반복해서 회복의 비전을 제시했다. 그분은 양떼를 인도할 막대기를 손에 들고, 은총과 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새 시대를 여시고자 했다.
하지만 그 비전은 곧 깨진다. 백성은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고, 지도자들은 자기 이익에만 몰두했다. 하나님의 은총의 언약은 사람들의 불순종 속에 거절당하고, 마침내 하나님은 그 언약을 스스로 폐기하신다. 이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유다 사이의 연합이 깨지고 공동체 전체가 영적 파국으로 치닫는 신호였다.
죽음으로 내몰린 양떼, 책임을 외면한 지도자들
스가랴가 본 양떼의 모습은 처참했다. 하나님은 “잡혀 죽을 양떼를 먹이라”고 말씀하시지만, 그 양들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존재에 불과하다. 그들을 돌보아야 할 목자들—즉, 정치적·종교적 지도자들은 양떼를 보호하기는커녕, 되레 팔아 넘기며 이득을 챙겼다.
하나님은 이 모습을 통해 당시 지도자들의 본질을 폭로하신다. 그들은 참된 목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삯군 목자’였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양떼를 팔아넘기고, 죽음 앞에 방치한 자들이었다. 그 결과, 하나님은 더 이상 그들을 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양떼는 보호받지 못하고 흩어지며, 목자는 책임에서 손을 떼버린다.
은 삼십에 거래된 목자와 토기장이에게 던져진 대가
예언자는 “은 삼십”이라는 금액을 받는다. 이는 당대 노예 한 사람의 값이었다. 하나님께서 목자 역할을 수행한 예언자에게 백성이 지불한 품삯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 금액은 경멸과 무시의 상징이었다. 하나님은 이 은 삼십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고 명하신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후일 유다의 배신으로 예수가 은 삼십에 팔리고, 그 돈이 토기장이의 밭을 사는 데 쓰였다는 신약의 사건과 맞물리며, 성경 전체의 예언적 연속성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진정한 지도력을 헐값에 평가하고, 영혼의 가치를 은삼십에 거래하려는 이들이 존재한다. 하나님의 언약은 가벼이 여기고, 일시적인 이득을 좇는 구조적 배신은 반복되고 있다.
어둠 속에서 선한 목자를 사모하는 공동체의 갈망
스가랴는 이 끔찍한 영적 붕괴의 시대를 통탄하며 바라본다. 죽음이 현실이 되고, 목자 없는 양떼가 거리에 방치된 현실 속에서, 그는 하나의 갈망을 품는다. “선한 목자는 어디 있는가?”
이 갈망은 오늘의 공동체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거짓 지도자들이 넘쳐나는 시대, 자기중심적 리더십이 사회를 병들게 하는 현실 속에서, 진정으로 양떼를 위해 목숨을 내어놓는 ‘선한 목자’에 대한 갈망은 더욱 간절해진다. 선한 목자는 단지 신앙의 상징이 아니라, 공동체를 살리고 회복시키는 진정한 지도자의 표상이다.
이 어둠 속에서 우리 사회와 교회가 다시금 ‘은총’과 ‘연합’의 막대기를 붙들고, 참된 목자의 길을 회복하는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