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십니까. 대한청년일보 대표 서진욱입니다.
대한민국의 청년이 겪고 있는 고용 현실, 그리고 이를 둘러싼 구조적 모순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 이 글을 씁니다.
겉으로는 일자리도 많고 청년도 넘쳐나지만 정작 서로를 만나지 못하는 이 기묘한 불일치는 ‘누군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건 바로 시스템의 불일치, 사회 구조의 오작동입니다.
청년들이 꿈을 꾸고 기업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매칭 시스템이 마련되기 전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이 물음에 갇힐 수밖에 없습니다.
“청년은 일자리가 없다, 기업은 사람이 없다”… 누가 거짓말을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지금 해야 할 가장 절실한 작업이라 믿습니다.
1. 수만 개의 일자리 vs 수만 명의 구직자, 왜 서로를 못 만날까
“사람이 없어서 공고를 내도 안 들어와요.”
“지원할 곳이 없어요. 맨날 경력직만 뽑잖아요.”
기업과 청년, 서로의 말이 전혀 다른 세상에서 나온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놀랍게도 둘 다 진실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체 어디서 거짓말이 만들어지는 걸까?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7월 전체 실업률은 2.4%로 비교적 안정적이다. 하지만 청년층(15~29세)의 실업률은 5.5%로 전체 평균의 두 배가 넘는다. 이와 동시에 기업들은 “구직자 1명당 일자리 수”를 나타내는 구인배수 0.40이라는 역대급 낮은 수치를 기록하며 사람을 못 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고용률은 올라가고, 실업률은 낮아지는데, 청년은 취업을 못 하고, 기업은 채용을 못 한다.
이 기괴한 퍼즐의 정체는 무엇일까?
문제는 일자리의 ‘수’가 아니라 ‘질’과 ‘기회’의 불일치다. 청년들은 연봉, 복지, 근무 환경 등을 고려해 소수의 기업에 몰리고 다수의 중소·지방 기업은 외면당한다. 그 결과, 고용시장에 존재하는 수많은 ‘빈자리’와 수많은 ‘실업자’는 서로를 만나지 못한 채 어긋난다. 이 불일치는 개인의 노력 부족이나 특정 집단의 고집으로 설명하기엔 너무 구조적이다.
2. 청년은 대기업만, 기업은 경력직만… 불일치의 구조적 원인
한국의 고용 시장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청년들은 “우린 준비됐어요!”를 외치고, 기업은 “경력 있는 사람만요”라고 응답한다.
이 갈등의 핵심은 '위험 부담'이다.
기업 입장에서 신입은 도박에 가깝다. 한국은 정규직 해고가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OECD 기준, 한국의 정규직 고용보호 강도는 상위권이다. 해고 소송, 노사 갈등, 복잡한 인사 절차 등을 감안하면 기업은 채용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신입 대신 바로 투입 가능한 경력직을 선호한다.
이 구조는 인턴 채용조차 '경력자 우대'가 되는 황당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아직 사회에 나온 적이 없는 청년이 처음 겪는 현실이 “넌 아직 준비가 안 됐어”라는 거부의 메시지라면 누가 쉽게 다시 도전하겠는가?
청년들은 안정적인 대기업이나 공기업, 혹은 공무원 시험에만 집중하게 된다.
일단 들어가면 버티고 싶은 욕구가 강한 사회 구조 속에서 ‘좋은 자리’만이 유일한 선택지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반면, 지방이나 제조업 기반 중소기업은 인재를 유치하지 못해 채용 공고를 반복하고 결국 채용을 포기한다. 악순환은 반복된다. ‘들어올 사람이 없다’는 말은 채용 기준의 유연성 부족과 교육 연계 부족이라는 시스템 문제로 귀결된다.
3. 스펙은 넘치고 기회는 부족한 한국형 고용 시스템의 모순
한국 청년들은 부족하지 않다. 오히려 과잉 스펙 사회 속에서 대학 졸업자는 이미 인플레이션 상태다. 토익 점수, 자격증, 어학연수, 봉사활동, 인턴 경험까지… 포트폴리오는 풍성하지만 ‘일을 시켜본 경험’은 부족하다. 그런데도 기업은 여전히 ‘실전 경력’을 요구한다.
이 악순환의 고리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첫째, 교육과 산업의 속도차다. 한국의 대학은 여전히 전통적인 학문 중심 커리큘럼을 유지하고 있으며, 신산업이나 직무 기반 교육은 여전히 주변적이다. 실습, 프로젝트 기반 교육, 졸업 전 인턴십이 일상화되지 않은 대학 시스템은 청년이 실전에 적응할 기회를 박탈한다.
둘째, 채용 프로세스의 낙후성이다. 여전히 ‘학력, 전공, 자격증’ 중심으로 인재를 선별하는 방식은 지원자의 실질적인 역량이나 업무 수행 능력을 가리지 못한다. 반면 글로벌 기업이나 유연한 조직문화의 스타트업은 ‘과제형 채용’이나 ‘오픈 포트폴리오’를 적극 도입한다. 결국 스펙이 넘쳐도 문은 닫혀 있고, 청년은 준비돼 있지만 기회는 없다.
셋째, 정부 정책의 일회성이다. 청년 채용 보조금, 인턴 제도 등은 있으나 ‘지속 가능한 진입 플랫폼’이 아니다. 몇 개월짜리 인턴 후 아무 보장 없는 현실 속에서 기업도 청년도 진지하게 투자하지 않는다. 진입의 문턱을 일시적으로 낮추는 것이 아니라, 진입 자체를 구조화하는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는 이상, 실질적인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4. 해외에서 배우는 고용 매칭 전략, 한국형 해법은 가능한가
고용 미스매치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는 이 구조적 문제에 체계적으로 대응해왔다.
대표적인 예가 독일의 이원화 직업교육 시스템(VET)이다. 기업과 학교가 함께 커리큘럼을 설계하고 청년은 졸업과 동시에 실무 역량을 갖춘 채 취업 시장에 진입한다. ‘견습생’이라는 제도가 청년과 기업 모두에게 예측 가능한 리스크를 제공해 이탈률을 낮추고 만족도를 높인다.
스위스도 마찬가지다. 청년 경제활동 인구의 30% 이상이 견습생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은 고등학교 단계부터 산업 현장과 연결된 실무 능력을 키운다. 단지 취업만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실전과 직결된 설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싱가포르는 좀 더 디지털한 접근을 시도했다. SkillsFuture Credit이라는 국민 평생학습 계좌를 만들어 누구나 원하는 분야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전직(轉職) 전환 프로그램(CCP)을 통해 중소기업과 청년을 이어준다. 중요한 건 ‘기업이 감당해야 할 리스크’를 제도적으로 낮추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사례들을 한국에 그대로 들여오기는 어렵다. 그러나 방향성은 차용할 수 있다.
① 채용-교육-보조금 연계를 통합해 ‘첫 일 경험’을 제도화해야 한다.
② 스펙보다 ‘스킬’을 중심으로 채용과 이력서의 언어를 바꾸어야 한다.
③ 과제형 채용과 공개 포트폴리오를 통해 구직자와 기업 간의 신뢰를 높여야 한다.
④ 대학-산업 연결 인턴십을 제도화하고 유급 현장경험을 졸업 요건에 포함시켜야 한다.
결론은 진짜 거짓말은 ‘잘 안 맞는다는 사실’조차 외면하는 사회
한국 고용시장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누구일까? 사실상 ‘아무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문제는 서로가 ‘진실’만 말하고 있지만 서로의 현실을 전혀 이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청년은 경험이 없어서 기회를 못 얻고, 기업은 기회 없이 바로 성과를 원한다. 교육은 산업을 못 따라가고 정책은 속도에 밀린다. 이 모든 현실이 청년에게 ‘문을 열지 않는 사회’라는 인상을 남긴다.
이제는 '스펙'보다 '스킬', '경력'보다 '가능성'에 투자해야 할 때다. 청년 고용은 더 이상 경기의 문제가 아니라 매칭의 기술이다. 거짓말은 서로가 아니라, 시스템 속에 있다. 그리고 그 시스템은 바꿀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