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영수(가명, 39세)는 최근 둘째 아이 출산과 동시에 전세 계약 만료로 이사 문제를 겪고 있었다. 기존보다 더 넓은 집으로 옮기기 위해 전세자금이 필요했지만, 당장 손에 쥘 수 있는 여유자금은 부족했다. 고민 끝에 김 씨는 퇴직금 중간정산을 떠올렸다. 10년 넘게 한 회사에 근무해왔기에 적립된 퇴직금이 제법 되는 상황이었다. 김 씨는 회사 인사팀에 관련 사유와 함께 중간정산을 신청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우리 회사는 중간정산을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는 통보였다.

김 씨는 어리둥절했다. ‘퇴직금은 내가 받을 돈인데 왜 회사가 거절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많은 직장인들이 퇴직금 중간정산을 두고 이와 비슷한 혼란을 겪고 있다. 그렇다면 법적으로 회사는 퇴직금 중간정산 요청을 거절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퇴직금 중간정산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퇴직금을 미리 받는 것은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허용되며, 이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시행령 제3조의2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가능한 사유는 총 6가지로 제한된다. ▲무주택자의 주택 구입 또는 전세 임차, ▲본인·배우자·부양가족의 6개월 이상 질병 치료, ▲천재지변에 따른 재산 피해, ▲개인회생 절차 개시, ▲장기요양 보호 필요, ▲노동부 장관이 인정한 기타 사유가 그것이다.
김 씨의 경우처럼 전세 재계약이나 이사 자금의 필요는 ‘무주택자의 전세 임차’에 해당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서류였다. 회사 측은 김 씨에게 등기예정확인서, 무주택 확인서, 임대차계약서 원본 등을 요구했고, 김 씨는 일시적으로 이 자료를 준비하지 못했다. 결국 회사는 “요건 미비”를 이유로 중간정산을 반려했다.
이처럼 회사는 법적으로 정해진 요건이 갖춰지지 않았거나, 증빙 서류가 불충분할 경우 중간정산을 정당하게 거절할 수 있다. 하지만 김 씨처럼 사유가 명확하고 자료가 보완 가능한 경우까지도 일방적으로 "방침상 불가"라고 막는 것은 문제다. 근로자가 법정 사유와 정당한 자료를 갖춰 신청했다면, 회사는 이를 수용해야 한다. 거부가 반복될 경우,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제기하거나 법적 구제 절차를 밟을 수도 있다.
실무적으로는 신청 이전 철저한 준비가 필수다. 주택 구입이나 임차라면 계약서 사본, 잔금 납입증명, 등기 예정확인서, 무주택 확인서가 필요하다. 치료비 사유일 경우 진단서, 입원확인서, 치료비 영수증 등을 갖춰야 한다. 또한 본인과의 가족 관계를 입증하기 위한 가족관계증명서, 건강보험 자격득실확인서 등도 준비하는 것이 좋다.
한편 중간정산을 하면 퇴직금이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자주 나오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중간정산은 해당 시점까지 발생한 퇴직금을 먼저 정산해주는 것이며, 퇴직 시점에는 남은 기간에 대해 새로 정산된다. 다만 중간정산분에 대해 소득세가 먼저 부과되어 실수령액이 줄어든 것처럼 느껴질 수 있고, 이후 퇴직금 총액의 절세 혜택이 줄어들 가능성은 있다. 따라서 신청 전 노무사나 세무사 등 전문가와 상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결국 퇴직금 중간정산은 ‘회사 허락’을 받는 개념이 아니라, ‘법적 요건’이 먼저인 제도다. 회사가 무조건 거절할 권리는 없으며, 근로자도 무턱대고 요구할 수는 없다. 김 씨의 사례처럼 실제 필요 상황에서 퇴직금 중간정산을 검토하는 직장인이라면, 먼저 자신의 사유가 법령상 요건에 해당하는지 점검하고, 관련 서류를 꼼꼼하게 준비한 뒤 신청해야 한다. 필요할 경우 고용노동부의 상담 센터나 전문 노무사의 조언을 구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