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합천군을 비롯한 경남 내륙에 쏟아진 기록적인 폭우는 그야말로 재난이었다. 불과 나흘 만에 연간 강수량에 육박하는 비가 쏟아졌고, 특히 합천에는 하루 256㎜가 넘는 폭우가 집중되면서 마을은 물에 잠기고, 삶의 터전은 유실되었다. 주택이 무너지고, 산사태로 주민이 매몰되는 일도 벌어졌다. 이 정도면 “기록적”이라는 표현조차 무색하다.
사태의 심각성은 단지 강수량의 수치에 있지 않다. 이번 피해는 예고된 위기였고, 반복된 경고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한 인재性 재난의 성격도 짙다. 합천을 포함한 경남 내륙은 지형적으로 산악과 하천이 복합적으로 얽힌 구조를 가지고 있다. 폭우가 오면 급류와 산사태가 동시에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는 2020년대 이후 여러 차례의 재난에서도 확인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주요 도로는 끊기고, 전력은 마비됐으며, 정전과 통신 장애까지 겹치며 군 전체에 대피령이 내려졌다. 준비는 충분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재난은 기후 위기의 “국지화”와 “집중화” 현상을 생생히 보여주는 사례다. 더 이상 “우연한 이상기후”라고 부를 수 없다. 매년 반복되고 강도는 심화되며, 피해는 특정 지역에 집중된다. 기상청의 수치예보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대피령 발령 시점, 고립지역 구조 동선, 저지대 주민 관리 등에서 현장 맞춤형 대책이 아쉽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재난을 ‘복구’의 문제가 아닌 ‘예방’의 문제로 바꾸는 관점 전환이다. 정부는 신속히 응급복구 예산을 지원하고 구조대를 파견했지만, 이미 무너진 삶의 자리는 예산으로 회복되지 않는다. 기후 재난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미리 피하는 능력’이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데이터, 교육, 인프라, 그리고 정책이다.
이번 합천 사태를 기점으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재난 대응을 다음 단계로 끌어올려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 전략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백 년 만의 폭우’라는 표현은 이제 면책이 될 수 없다. 백 년에 한 번이, 매년 일어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예외가 아니다.
합천의 비극이 더 큰 재난의 서막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시작되어야 한다.
논설위원 주경선
본사 발행인 겸 편집장
목사, 사회복지사, 심리상담사,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