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뷰티큐레이터 설민규 칼럼입니다.
바쁜 현대인의 간편주의, 멀티비타민 크림이 말해주는 우리 시대의 라이프스타일 혁명.
3분 vs 30분, 누가 이길까.

새벽 6시 30분, 카톡으로 시작되는 하루
언니 나 지각할 것 같아 ㅠㅠ 지하철에서 화장해야겠다
친구 수진이가 보낸 카톡을 보며 웃었다가, 내 모습을 돌아보니 웃을 일이 아니었다. 나 역시 택시 안에서 립밤을 바르고 있었으니까. 언제부터였을까 집에서 여유롭게 스킨케어를 하고 나오는 게 사치가 된 건
그런데 요즘 수진이의 화장 파우치가 눈에 띄게 가벼워졌다. 멀티비타민 크림 하나면 끝이야. 토너, 에센스, 세럼, 크림 이런 거 다 필요 없어!
아, 맞다. 나도 그랬지. 작년까지만 해도 10단계 스킨케어를 종교처럼 믿고 따랐는데, 지금은 멀티비타민 크림 하나 쓱싹 바르고 끝.
이게 진화인가, 퇴화인가.
시간 없어 죽겠다 스킨케어마저 빨리빨리 해야 하는 시대
밤 11시, 집에 도착한 직장인의 현실
어휴, 오늘도 늦었네
현관문을 열며 한숨을 쉬는 건 이제 일상이 됐다. 저녁 7시에 퇴근할 거라던 다짐은 어디로 갔는지, 결국 11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온다.
이제 남은 건 씻고 자는 것뿐. 그런데 문제는 스킨케어다. 예전 같으면 토너부터 시작해서 에센스, 세럼, 아이크림, 수분크림까지... 최소 15분은 걸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 이 모든 걸 다 해야 해 내일 아침 7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결국 멀티비타민 크림 하나로 끝. 3분 컷이다. 그리고 침대에 쓰러진다. 이게 2024년 대한민국 직장인의 리얼 라이프다.

지하철 안 화장의 진화사
기억하자. 10년 전만 해도 지하철에서 화장하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 왜 저래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저 파운데이션 어떤 제품이지라고 관심을 갖는다.
특히 아침 8시 지하철 2호선은 거대한 공중 화장실이다. 한 칸에 최소 3명은 화장을 하고 있고, 그들의 파우치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제품 개수가 현저히 줄었다는 것.
예전에는 파우치가 무거워서 어깨가 아팠는데, 지금은 스마트폰보다 가벼워요.
강남역에서 만난 직장인 김영희(27.가명)씨의 말이다. 그녀의 파우치에는 멀티비타민 크림, BB크림, 립틴트 이렇게 세 개만 들어있었다.
10단계 스킨케어 그게 뭔데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K뷰티의 자랑이었던 10단계 스킨케어. 클렌징오일부터 시작해서 폼클렌징, 토너, 에센스, 세럼, 아이크림, 모이스처라이저, 선크림까지. 정말 종교적으로 따랐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는 시간이 많았나봐요. 아니면 제가 철이 없었거나.
30대 회사원 박지현(가명)씨의 솔직한 고백이다. 그녀도 예전에는 화장대에 스킨케어 제품이 20개가 넘게 있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정말 미친 짓이었어요. 그 시간에 잠을 더 자거나 넷플릭스를 보는 게 나았을 것 같아요.
하나로 끝! 멀티 기능 제품이 신이 된 이유
원룸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
서울에서 원룸 산다는 것. 이건 정말 극한의 미니멀 라이프를 강요당하는 일이다. 20평이 넘나 그럼 전세 2억은 각오해야 한다. 대부분은 10평 남짓한 공간에서 산다.
그런데 이 좁은 공간에 스킨케어 제품 20개를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화장대 그런 사치품은 애초에 포기했다. 세면대 옆 선반이 화장대 역할을 한다.
선반에 토너, 에센스, 세럼, 크림... 이런 거 다 두면 칫솔 둘 자리도 없어요. 그래서 멀티 기능 제품 하나로 통일했어요.
홍대 근처 원룸에 사는 이수민(25.가명)씨의 말이다. 그녀의 선반에는 멀티비타민 크림 하나와 세안제, 그리고 칫솔만 있었다. 정말 미니멀의 끝판왕이다.
선택 장애의 시대, 결정 피로감의 증가
온라인 쇼핑몰에 들어가 보자. 토너만 검색해도 몇 백 개가 뜬다. 각각의 리뷰를 읽고, 성분을 비교하고, 가격을 따져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다 간다.
토너 하나 사려고 2시간 동안 인터넷 서핑했는데, 결국 뭘 사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멀티 기능 제품으로 갔어요. 적어도 고민은 줄어들잖아요.
마케팅 회사에 다니는 최민지(29.가명)씨의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보가 많아질수록 선택은 더 어려워진다.

스마트폰 세대의 당연한 요구
생각해보자.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전화도 하고, 사진도 찍고, 인터넷도 하고, 게임도 한다. 하나의 기기로 모든 걸 해결한다.
그런 세대가 왜 스킨케어만큼은 여러 개의 제품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겠는가 왜 크림 하나로 안 되는데라는 질문이 당연해진 것이다.
스마트폰이 전화, 카메라, 컴퓨터 기능을 다 합친 것처럼, 화장품도 당연히 여러 기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게 2024년 아닌가요.
IT 회사에 다니는 김태현(26.가명)씨의 말이다. 그는 남자지만 스킨케어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복잡한 건 싫어한다.
우리가 빨라진 만큼 잃어버린 것들의 슬픈 진실
할머니의 화장대를 기억하시나요
어렸을 때 할머니 화장대는 정말 신비로운 공간이었다. 예쁜 유리병들이 줄지어 서 있고, 할머니는 매일 저녁 그 앞에 앉아서 천천히 얼굴에 크림을 발라주셨다.
할머니는 그 시간을 정말 소중하게 여기셨어요. 마치 하루를 마무리하는 의식 같았죠.
40대 주부 정미경(가명)씨의 회상이다. 그녀도 어렸을 때는 할머니처럼 천천히 스킨케어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런 여유가 사치처럼 느껴져요. 아이들 재우고, 설거지하고, 빨래 걷고... 스킨케어는 30초면 끝이에요.
빨리빨리 문화의 부작용
한국인의 DNA에 새겨진 빨리빨리 문화. 이게 스킨케어에까지 침투했다. 모든 걸 빠르게 해결하려고 한다.
하지만 피부과 전문의들은 우려를 표한다. 스킨케어는 단순히 제품을 바르는 게 아니라, 자신의 피부 상태를 관찰하고 관리하는 과정이에요. 너무 빨리 끝내려고 하면 피부 변화를 놓칠 수 있어요.
이선영(가명) 피부과 전문의의 말이다. 실제로 그녀의 병원에는 제품은 좋은 걸 쓰는데 왜 피부가 안 좋아지죠라고 묻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잃어버린 나만의 시간
스킨케어는 원래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거울을 보며 오늘 하루를 돌아보고, 내일을 준비하는 시간. 그런데 지금은
스킨케어하면서 폰을 봐요. 유튜브 보거나 인스타 스토리 확인하거나... 순수하게 나만을 위한 시간은 없는 것 같아요.
20대 대학생 한지민(가명)씨의 고백이다. 멀티태스킹은 효율적일지 모르지만,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빼앗았다.
그래서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편리함과 깊이 사이의 줄타기
멀티비타민 크림의 인기는 필연이었다. 바쁜 현대인들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한 제품이니까. 하지만 이게 정답일까
편리한 건 좋은데, 가끔은 뭔가 허전해요.
예전에는 스킨케어 시간이 힐링 타임이었는데, 지금은 그냥 할 일 중 하나가 된 것 같아요.
30대 직장인 송혜진(가명)씨의 솔직한 마음이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새로운 균형점 찾기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조건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시간도 공간도 제약이 있으니까.
하지만 가끔은 의도적으로 여유를 만들어볼 수도 있다. 주말에는 10단계 스킨케어를 해보거나, 일주일에 한 번은 마스크팩을 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
평일에는 멀티비타민 크림으로 빠르게 끝내고, 주말에는 예전처럼 차근차근 해요. 이게 제 나름의 균형점이에요.
회사원 이지은(29)씨가 찾은 해답이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현실적인 대안이다.

빠름과 여유 사이에서 찾는 나만의 답
멀티비타민 크림 열풍은 단순한 제품 트렌드가 아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빨라졌는지,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포기하며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모든 걸 빠르게 해결하려는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때로는 느림의 가치도 기억해야 한다. 스킨케어는 단순히 얼굴에 뭔가를 바르는 행위가 아니라, 나 자신을 돌보는 시간이니까.
완벽한 정답은 없다. 어떤 날은 3분 만에 끝내도 되고, 어떤 날은 30분을 투자해도 된다. 중요한 건 선택권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선택을 의식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멀티비타민 크림을 쓰든, 10단계 스킨케어를 하든, 그건 각자의 선택이다. 하지만 가끔은 멈춰서 생각해보자.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빨리 살고 있는지.
오늘 밤, 5분만 더 투자해보세요. 멀티비타민 크림을 바르더라도 거울을 보며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스마트폰은 잠시 내려놓고,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하는 그 짧은 시간이 생각보다 소중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이번 주말에는 어떤가요 예전에 했던 스킨케어 루틴을 한 번만 다시 해보는 건 토너부터 천천히, 하나씩. 그 시간이 지루할 수도 있지만, 의외로 힐링이 될 수도 있거든요.
빠름과 느림, 편리함과 여유 사이에서 당신만의 균형점을 찾아보세요. 정답은 없으니까, 부담 갖지 말고요.
칼럼리스트 소개
설민규 대표는 수하코스메틱의 대표이자 건강뷰티큐레이터로서 천연화장품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국내전문메디컬코스메틱회사에서 쌓은 4년간의 경력을 바탕으로, 50여 곳의 피부과와 성형외과 원장들을 대상으로 전문적인 코칭과 컨설팅을 진행해왔다. 100여 건의 피부 관련 병원 및 업체 담당자 제품시연과 코칭을 통해 현장 중심의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으며, 서울 피부과 학술세미나 및 포럼에서 상담 및 부스참여의 경험으로 현재 친환경적이고 건강한 뷰티 솔루션을 추구하며, 현재 비건 기초화장품 및 필링제품 연구개발에 주력하고 있으며, 자체 개발한 천연 화장품을 통해 건강한 아름다움을 전파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