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시 신문동의 한 아파트 단지, 따뜻한 색감의 교실에 아이들이 모여 있다. 붓을 들고, 펜을 쥐고, 때로는 3D펜과 오토마타 기구를 조작하며 무언가에 몰입하는 모습은 일반적인 미술학원의 풍경과는 다르다. 이곳은 ‘파도아트랩’ —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이 미술 공간은 단순한 그림 그리기를 넘어서 아이의 사고력과 표현력, 그리고 창의력을 확장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 파도아트랩 김해민 원장 © 파도아트랩 |
파도아트랩을 운영하는 김해민 원장은 건축 설계와 디자인을 기반으로 예술교육 현장을 꾸준히 경험해 온 이력의 소유자다. 그녀가 이끄는 이 공간은 단순한 결과물이 아닌, ‘과정의 힘’을 믿는 창의융합 미술교육의 현장이자 실험실이다.
 ▲ 사진 © 파도아트랩 |
“사실 저의 전공은 건축 설계였어요. 건축 회사에서 일하면서 3D 디자인, 시각디자인 등으로 분야를 확장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교육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됐죠.”
 ▲ 김해민 원장의 디자인 작품들 © 파도아트랩 |
김 원장은 성인 및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다양한 창의 디자인 수업을 진행하며 교육현장에서의 경력을 쌓아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것 이상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보다, ‘무엇을 그리고 싶은지’,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과정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러한 통찰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졌다.
 ▲ 사진 © 파도아트랩 |
“만약 아이들이 더 어릴 때부터 이러한 창의적 사고와 기획의 경험을 해본다면, 그 아이는 성장했을 때 얼마나 더 풍부한 시야와 생각을 가진 어른으로 자랄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실현하기 위해 탄생한 공간이 바로 ‘파도아트랩’이다.
 ▲ 파도아트랩 학생들의 작품들 © 파도아트랩 |
파도아트랩은 프랜차이즈가 아니다. 이름부터 커리큘럼까지 모두 김 원장이 직접 설계하고 꾸린 결과물이다.
“파도아트랩은 단순한 미술교육 공간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탐색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설계된 창의융합 공간이에요. 저는 여기서 아이들에게 단지 그림을 잘 그리는 기술을 가르치려 하지 않아요. 예술과 디자인, 기술을 넘나들며 아이들 스스로 질문하고 해답을 찾는 힘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죠.”
 ▲ 파도아트랩 내부 전경 © 파도아트랩 |
현재 이곳의 주요 대상은 유아부터 초등학생까지다. 5세부터 초6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각자의 속도와 관심에 맞춰 수업에 참여한다. 교육은 크게 네 가지 클래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은 사고력, 감정 표현, 조형 기술, 시각 언어를 통합적으로 다룬다.
 ▲ 사진 © 파도아트랩 |
첫 번째 클래스는 ‘파도 프로젝트’. 철학, 감정, 인문학, 미술사 등 깊이 있는 주제를 탐색하며 ‘나는 누구인가’,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가’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표현하는 수업이다.
“아이들이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만의 세계관을 넓혀가는 시간을 제공합니다. 감정과 철학을 시각적으로 풀어보는 경험이죠.”
두 번째는 ‘디자인 씽킹’ 수업. 아이들이 직접 문제를 정의하고, 그에 대한 아이디어를 디자인적으로 풀어보는 활동으로 구성된다.
“이번 달엔 아이들이 스스로 매거진 디렉터가 되어보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본인이 에디터이자 모델이 되어 자기 생각을 콘텐츠로 구성하는 경험을 했죠.”
세 번째 클래스인 ‘빌트 앤 테크’는 3D 펜, 회로, 오토마타 등 다양한 기술과 도구를 활용하여 입체적인 조형물을 만드는 수업이다.
“단순히 예쁜 모형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기능성과 구조를 이해하고 설계하는 과정까지 포함됩니다. 실질적인 제작 능력과 창의적 기술을 함께 익히는 수업이죠.”
마지막으로 ‘드로잉 로직’은 일반적인 드로잉 수업을 넘어, 생각을 시각적 언어로 구조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크로키, 스타일 보드 제작 등 시각 언어를 조직화하는 수업이에요. 그림도 결국엔 언어입니다. 아이가 머릿속 이미지를 어떻게 외부로 표현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 깨닫는 훈련이죠.”
 ▲ 사진 © 파도아트랩 |
김해민 원장이 설계한 이 네 가지 수업은 전부 ‘아이의 생각’이 출발점이자 중심이다.
“아이에게 따라 그리게 하기보다, 아이가 스스로 주제를 기획하고, 해석하고, 표현하게끔 수업을 구성합니다. 같은 주제를 다뤄도 결과물은 모두 다르게 나와요. 그 자체로 너무나 가치 있는 일이에요.”
 ▲ 사진 © 파도아트랩 |
이런 철학은 파도아트랩의 슬로건에도 담겨 있다.
“모든 파도는 다르게 출렁인다.”
이는 각 아이의 다양성과 창작의 주도성을 인정하는 김 원장의 교육 철학을 그대로 대변한다.
 ▲ 사진 © 파도아트랩 |
김 원장은 교육자로서 가장 인상 깊었던 한 학생을 떠올렸다. 예전에 중학교에서 창의 미술 수업을 진행하던 시절, 한 학생과의 만남이 지금의 파도아트랩을 있게 한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그 친구는 평소 수업에 집중을 못 하고 문제를 많이 일으킨다던 아이였어요. 그런데 제 수업에선 너무나 열심히 하고 창의적인 결과물을 내놓는 거예요. 나중에 교과 선생님들이 오셔서 그 아이의 작품을 보고 너무 놀라셨다고 하시더라고요. 미술 수업을 통해 아이의 가능성을 발견했다고요.”
 ▲ 사진 © 파도아트랩 |
그때 김 원장은 깨달았다. 예술 수업은 단지 손재주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한 아이의 존재와 가능성을 드러내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날 이후, 정말 제대로 된 수업을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지금 여기까지 왔죠.”
김 원장은 현재 빠른 확장보다는 '깊은 수업'에 더 집중하고 있다. 아이들과의 창작 리듬을 맞추는 것이 지금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아이들과 함께 파빌리온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혼자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드는 창작의 의미를 경험하게 하고 싶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이곳에서 도출된 수업 방식과 사례를 정리해 ‘파도아트랩만의 콘텐츠’로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다.
 ▲ 파도아트랩 내부 전경 © 파도아트랩 |
“결국 제가 바라는 건, 정답이 있는 수업이 아니라 방향성 있는 수업이에요. 아이 스스로 기획하고, 실험하고, 표현하며 스스로를 설계해가는 과정 말이죠.”
인터뷰의 마지막에서 김 원장은 학부모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조용히 그러나 확고하게 말했다.
“아이들은 모두 각자의 파도를 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 파도가 크든 작든, 빨리 오든 천천히 오든 다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 사진 © 파도아트랩 |
그리고 덧붙였다.
“저희 파도아트랩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심에 둔 공간입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방식, 흥미 있는 표현 언어를 발견하고 싶은 분들께, 저희가 좋은 동반자이자 나침반이 되어드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 파도아트랩 입구 © 파도아트랩 |
김해의 한 귀퉁이에서 시작된 이 작은 파도는, 이제 아이들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성장시키는 진정한 창작의 물결로 확장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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