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벌 받을 한(恨)을 심지 말라

한 무제의 분노가 키운 역사

사마천의 사기 탄생


<사진: AI image. antnews 제공>

고대 중국의 한()나라를 부강하게 만든 젖줄은 비단길이었다. 비단, , 향신료, 도자기, 종이 등등, 온갖 물산이 비단길을 따라 서역으로 가면서 한나라의 국고엔 황금이 쌓였다. 문제는 흉노족이었다. 흉노족은 끝없이 실크로드를 막고 서역으로 가는 한나라의 대상들을 약탈했다. 마침내 한무제(漢武帝)가 칼을 뽑았다. 그러나 어느 날 한무제에게 비보가 날아들었다. 이릉(李陵) 장군이 이끌고 나간 군사 5,000명이 8만 흉노군에게 패하여 항복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 소식을 접한 한무제의 분노가 펄펄 끓는 중에 패장 이릉(李陵)이 입궐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패전의 책임은 작전을 짜고 전투를 총지휘한 이광리(李廣利)가 져야 했지만 그는 한무제의 처남이었다. 패장 이릉이 한무제 앞에 무릎을 꿇고 앉자 한무제가 벽력같은 목소리로 이릉의 목을 치라는 명을 내렸다. 그러자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모두가 입을 닫고 있는데 한 신하가 고개를 들고 간했다. “전하! 한 번의 패배는 병가지상사이옵니다. 흉노 군사는 우리의 열 배가 넘었고, 우리 군대는 화살이 바닥나 더 싸울 수가 없었습니다.”

 

용감한 충신의 간언은 한무제의 화를 더욱 폭발시켰지만 그 신하는 굴하지 않았다. “이릉 장군의 선대도 한나라의 초석을 다지는 데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렇게 진언하는 신하는 사실 이릉 장군을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사이였다. “저놈의 주둥이 닥치지 못할까!” 결국 이릉 장군은 목이 날아가고 그 일가는 멸문을 당했다. 그리고 간언을 올린 충신은 옥에 갇혔는데 그의 이름은 사마천(司馬遷)이었다. 사마천도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불같은 화를 조금 가라앉힌 한무제로부터 한줄기 시혜를 받았다. 사형과 벌금과 궁형(宮刑) , 택일하라는 명을 받았던 것이다. 벌금은 50만전으로, 군사 5,000명을 1년 동안 먹일 수 있는 거금이라 하급 신하인 사마천에게는 어림없는 조건이었다.

 

따라서 목숨을 건질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궁형이었다. 궁형이란 한마디로 거세당하는 것이다. 사대부에겐 사형보다 더 치욕적이고 괴로운 형벌이다. 사마천은 감옥에서 곰곰이 생각한 끝에 결국 궁형을 택해 목숨은 건졌지만 온 세상의 비웃음을 사고 풀려나 내시가 되었다. 화가 끓는 한무제 앞에서 서슴없이 직언을 한 충신이 이렇게 죽음과 굴욕을 맞바꾼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버지의 유언 때문이었다. 아버지 사마담(司馬談)은 사관(史官)이었다. 방대한 중국 역사를 체계적으로 집대성하고자 사기(史記)의 집필에 나섰지만 당대에 완결할 수 없었다.

 

부친 사마담은 전문 역법과 도서를 관장하는 태사령(太史令)으로 사마천이 어릴 때부터 고전 문헌을 익히도록 하고 여러 곳을 여행하며 견문을 넓히도록 독려했다. 사마천은 황제의 시종인 낭중(郎中)이 되어 한무제를 수행하면서 강남, 산둥, 허난 등, 여러 지방을 다닐 때마다 많은 사료를 수집했다. 그것이 훗날 사기(史記)를 집필하는 큰 자양분이 되었다.

 

기원전 110, 부친 사마담이 눈을 감으며 사마천에게 완결하지 못한 사기(史記)를 꼭 마무리 지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런 유언을 간직한 사마천은 감옥에 갇혀서도 오로지 머릿속에는 온통 사기(史記)뿐이었다. 사마천은 치욕적인 궁형을 택해 뭇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고 침을 뱉어도 오로지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참고 또 참으며 한 자, 한 자 사기(史記)를 엮어나갔다.

 

궁형을 받은 후 사마천의 생각은 많이 바뀌었다. 정의가 꼭 승리하진 않는다는 것, 권력을 쥔 자만이 역사를 이어가는 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 결과 권력을 중심으로 편집한 수많은 역사서가 나왔지만, 사마천이 폭넓은 눈으로 역사를 엮은 사기(史記)에는 장사꾼, 아녀자, 도적, 백정도 역사의 일원으로 등장했다.

 

사마천은 마침내 기원전 90년 경에 본기(本紀), (), (), 세가(世家), 열전(列傳)의 다섯 부문으로 나누어진 130, 526,500자에 이르는 방대한 중국 역사서 사기(史記)를 완성했다. 그때 사마천의 나이는 약 55세였다. 그렇게 사기(史記)를 완성한 2년 후, 사마천은 마침내 이승을 하직했다.

 

1993년 개봉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西便制)”의 유봉(김명곤 분)은 여자 주인공 송화(오정해 분)의 소리에 한이 부족하다는 불만을 품고 남자 주인공 동호(김규철 분)가 떠나자 소리의 한을 높이기 위해 눈을 멀게 하는 약을 먹여서 송화를 장님으로 만들고 말았다. 그런 주제로 만들어진 "서편제"는 공식적인 관객 숫자 100만 명을 넘긴 한국 최초의 영화였다. 그 영화가 그렇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유의 핵심은 바로 사마천이 궁형을 받고 가졌던 한()과 똑같은 한() 맺힌 소리였다.

 

지금 국민들의 마음속에 천벌 받아 마땅할 한()을 심어주고 있는 정치인들이여, 그대들은 사마천 같은 사학자도 아니고, 임권택 같은 영화감독도 아니지 않는가? 제발 국민들의 마음속에 천벌 받을 한()을 심지 말라.

 

 

 

-손 영일 컬럼



작성 2025.06.06 09:27 수정 2025.06.06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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