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와 21세기 초반, 세계 에너지 질서를 지배한 기업 중 하나는 단연 엑슨모빌이었다. 이 기업의 역사는 1870년 록펠러가 설립한 스탠다드 오일에서 시작됐다. 이후 1911년 미국 대법원의 반독점 소송으로 스탠다드 오일은 여러 개로 분할됐고, 이 중 하나가 현재의 엑슨모빌로 성장하게 된다. 1999년 엑슨과 모빌의 합병으로 탄생한 엑슨모빌은 단일 민간 기업으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석유 및 가스 기업이 되었다.
이들은 원유 탐사, 채굴, 정제, 수송, 유통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를 아우르며 국제 정세와 정치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자원 확보를 위한 외교적·군사적 접근이 강화되며 엑슨은 종종 미국 정부의 정책과 맞물려 움직였고, ‘에너지 패권’이라는 개념 속에서 이들의 위상은 단순한 기업을 넘어 국제 권력의 축으로 작동했다.

엑슨모빌은 1970년대 후반부터 지구온난화와 탄소배출의 상관관계에 대해 자체적으로 연구를 수행했다. 이들은 기후 변화의 원인이 인류의 화석연료 사용이라는 사실을 내부적으로는 인지하고 있었지만, 이를 외부에 공개하거나 정책 변화에 나서지는 않았다. 오히려 과학적 불확실성을 강조하고, 기후변화에 대한 회의론을 조장하는 연구와 홍보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기후위기 대응을 지연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기업의 단기 이익에는 유리했을지 모르나, 결과적으로는 지구 환경과 인류의 미래에 큰 부담을 남겼다. 2015년 이후 미국 내 언론과 환경단체들은 이를 '엑손 기후 은폐(Exxon Knew)' 스캔들로 명명하며 기업 윤리에 대한 강한 비판을 이어갔다.
21세기 들어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엑슨모빌 역시 변화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유럽의 주요 석유회사들이 앞다퉈 재생에너지와 탄소중립 선언을 내놓는 가운데, 엑슨모빌은 비교적 보수적인 행보를 이어왔다. 하지만 투자자와 사회적 요구에 밀려 최근에는 탄소 포집 및 저장 기술(CCS), 수소 연료 개발 등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또한 2021년에는 해지펀드 ‘엔진 No.1’이 이끄는 주주 행동주의 캠페인으로 인해 이사회에 친환경 전환을 요구하는 이사진이 포함되면서 엑슨의 경영 전략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전체 투자 규모의 상당 부분이 화석연료에 집중돼 있어 진정한 전환보다는 ‘그린워싱’이라는 지적도 존재한다.
자본의 윤리, 엑슨모빌이 남긴 교훈
엑슨모빌의 사례는 거대 자본과 윤리의 교차점에 놓인 기업의 운명을 보여준다. 이들은 기술력과 정치력을 바탕으로 세계 에너지 시장을 지배해왔지만, 그 과정에서 지구와 인류의 지속 가능성을 희생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기후위기가 심화되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강조되는 시대, 엑슨모빌의 지난 행보는 많은 기업들에게 중요한 반면교사로 남는다. 진정한 변화는 외부의 압력에 의한 수동적 대응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책임 있는 판단에서 시작돼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