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교육디지털박물관(관장 송명숙)이 공업화로 사라진 용잠초등학교의 기록물을 대거 발굴하며, 울산 교육사의 잊힌 조각들을 본격적으로 수집하고 있다.
1939년 울산 남구 용잠동에 설립된 용잠초등학교는, 울산 공업단지 조성과 공해 확산 속에 1977년 문을 닫았다. 국내 산업화의 그늘 속에서 사라진 학교였기에, 그 교육 기록은 오랜 시간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 최근, 한 졸업생의 방문이 이 잊힌 학교의 기록을 다시 세상 밖으로 꺼내놓았다.
시민 한 사람의 기억에서 시작된 기록 발굴
지난해 12월, 문수실버복지관 기자단으로 활동 중인 강영숙 씨가 디지털박물관을 찾았다. 용잠초 제23회 졸업생이었던 강 씨는 박물관에서 전시된 ‘울산교육 이야기’를 접한 후, 자신의 유년 시절 기억과 맞닿은 용잠초의 흔적을 되짚기 시작했다.
강 씨는 자신이 보관하던 초등학교 시절의 시험지, 임명장, 성적표 등을 기증하고, 잊힌 동문들을 직접 찾아 나섰다. 이 움직임은 곧 지역사 연구자, 동문, 교육자들까지 확산되며 본격적인 자료 수집으로 이어졌다.
자서전, 졸업사진, 학교 연혁… ‘시민 아카이빙’의 힘
발굴 작업은 울주지역사연구소 장성운 소장이 이재만 전 용잠초 교장의 자서전 『춘계만보』를 기증하면서 한층 확장됐다. 이 책에는 해방 직후의 학교 운영 모습부터 교육 현장의 풍경, 국기게양대 이전 등 역사적 장면이 생생히 담겨 있다.
특히 자서전에는 당시 용잠초 사택에서 태어난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의 유년기도 포함되어 있어, 교육과 공직의 연결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이외에도 지역 연구자 박채은 선생이 소장한 졸업사진, 동문회 명부, 학교 연혁 자료 등도 함께 확보되어, 사라진 학교의 역사가 점차 복원되고 있다.
폐교 기록, 시민의 손으로 다시 세운다
울산교육디지털박물관이 추진 중인 ‘폐교 기록물 수집 사업’ 은 전국에서도 보기 드문 시도로, 특히 일반 시민의 참여를 중심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현존 학교들과 달리 폐교는 공식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기에, 졸업생이나 지역 주민들이 소장한 자료가 핵심이 된다. 그만큼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참여가 기록의 공백을 메우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국내 최초 ‘시민 참여형 교육박물관’ 운영
울산교육청은 이러한 흐름을 반영해, 울산교육디지털박물관을 국내 최초의 시민 참여형 교육박물관으로 운영 중이다. 자료 발굴부터 정리, 전산화, 아카이빙까지 모든 과정에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있다.
지역 연구자, 교사, 일반 시민 등 다양한 분야의 참여자 24명이 ‘시민지원단’으로 위촉되어 활동 중이며, 이들의 참여는 울산 교육의 정체성을 복원하고 공유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박물관이 아닌, 시민의 기억이 만든 역사
울산교육디지털박물관의 이번 용잠초 기록 발굴은 단순한 사료 수집을 넘어, 시민 스스로 자신의 역사와 지역의 교육사를 되살려낸 상징적 사례다.
산업화의 그늘에서 사라졌던 작은 초등학교의 기억이, 이제 시민의 손으로 다시 울산 교육의 역사 속에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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